귤의 섬 제주도.
제주도는 귤의 섬이다. 제주도의 상징나무는 녹나무라고 하지만 귤나무처럼 제주도를 제주답게 하는 나무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육지에서도 귤나무가 있지만 일부 지역의 온실 속에서 숨어있을 뿐이다. 제주도의 귤나무는 비닐 없이도 햇빛을 받아 가을부터 제주도를 온통 귤빛 세계로 만든다. 그래서 제주항공 비행기가 귤색으로 칠해져 있고, 승무원의 옷도 귤색이고, 회사 로고도 귤색인데 어느 항공사보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보인다. 귤나무는 키가 작아 볼품이 없지만 그 나뭇잎만큼이나 많은 귤을 가득 달고 있어 가지가 무척 힘들어 보인다. 제주도는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어서 가을뿐 아니라 겨울에도 여전히 나무는 노란 귤을 달고 있는 모습은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남국의 진풍경이다. 제주도의 상징색은 파랑이라고 하지만 그거야 어떤 섬이라도 다 갖고 있는 색깔이라 제주도의 상징색으로 삼기에는 귤빛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가을이 되면 제주도는 귤이 지천이다. 귤밭에 귤이 여기저기 떨어져 쌓여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길바닥에 귤이 뒹굴어도 줍는 사람도 없다. 귤밭을 지키는 사람도 없고, 남의 밭 귤에 손대는 사람도 없다. 지나가다 말만 잘하면 비닐봉지에 귤을 담아주기도 하니 땅에 떨어진 귤을 주워먹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다만 담아서 가져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 귤을 사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귤 수확 철이 되면 올레길에도, 음식점, 가게 점포마다 한 구석에는 귤이 가득 담겨 있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육지에도 지역마다 특산품이 많지만 제주도 귤만한 인심이 없다. 사과, 밤, 대추, 참외, 곶감- 어떤 특산지에 가봐도 대놓고 공짜로 먹으라는 데는 없다. 심지어는 농장 주인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생산은 많지만 풍성하지도, 여유도 없이 각박하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귤은 지나가는 사람도, 식당 가게에 들르는 사람도, 심지어는 길 가는 사람도 마음대로 공짜로 귤을 먹을 수 있으니 제주의 인심이 넘쳐난다. 시장에 가면 만 원이면 10Kg도 더 살 수 있으니 이렇게 싼 과일이 어디에 있으랴?
이렇게 많은 귤도 보관성이 좋지 않아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당뇨가 좀 걱정이 되지만 이 많은 귤을 썩여 내버린다면 너무 아까운 일이다. 사람들은 싱싱한 과일을 좋아하지만 생선회도 싱싱한 것보다 약간 숙성이 돼야 맛이 나듯이 귤도 약간 맛이 가도 맛이 있다. 조생종보다는 겨울에 따는 귤이 더 맛이 있다. 어찌 그것들 뿐이랴? 사람도 물이 가야 뒤늦게 철이 들기 마련이다.
제주도에서 언제부터 귤이 재배되었는지는 몰라도 약 천 년 전에 이미 조정에 귤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해에 100포만 진상하라 했다니 진상의 폐해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후로 왕실이나 선비들이 궁중에서 귤을 먹었다는 기록이 많지만 서민들이야 ‘그림의 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흔한 귤이지만 북한에서는 송이만큼이나 귀한 물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귤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흔한 과일이었다. 잔치집에서 나온 귤을 부모님께 드리려고 몰래 감추었다는 효자의 노래가 회귤가(懷橘歌)이다. 인기 있는 남자들이 길을 가노라면 집안에서 여인들이 귤을 던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보다 더 비싼 달걀을 미운 사람에게 마구 던져대니 닭이 억울한 일이다. 귤은 맛있는 과일이기도 하지만 약리작용도 있어 각종 영양소에다가 비타민 C가 많고, 껍질은 진피(陳皮)라는 한약재로 쓰이기도 하니 흔하면서도 보통 과일하고는 다르다.
지금은 귤나무를 개량하여 키가 작아졌지만 재래종 귤나무는 매우 키가 커서 수확하기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철 따라 진상품을 올려야 하는 제주 농민들의 고통도 컸다. 지금의 특산물은 주민의 소득원이지만 옛날에는 전복, 해산물과 같이 주민을 괴롭히는 두통거리였다. 귤에는 수확철에 따라 감귤, 만감, 하귤로 나눈다. 그리고 맛에 따라서 주종인 감귤 외에도 천혜향, 한라봉, 황금향, 레드향 등의 개량종이 귤 맛을 더하고 있다. 품종마다 수확 철이 달라 가을부터 초여름까지 귤 맛을 즐길 수 있다. 지금의 감귤은 백여 년 전 프랑스 신부에 의해서 서귀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재배가 늘어나서 한때는 대학나무로 불려졌다고 한다. 수익이 좋아 나무 두 그루면 서울로 대학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해서이다. 그때만 해도 육지에서 귤을 먹는다는 것은 여간 호사가 아니었다.
지금은 귤이 과잉생산되어 농민들의 고충이 크다고 한다. 유통되는 귤 중에는 불량품도 많아서 신뢰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품질관리를 엄격히 하여 맛이 떨어지는 귤은 판매하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서 귤을 세척하고 빛깔을 좋게 하는 처리를 하는데 그런 귤은 맛도 덜하고,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보기에는 투박하게 생겼지만 노지에서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은 귤이 좋다고 한다. 귤의 품질유지를 위해서 맛이 떨어지는 귤은 출하를 금하여 귤밭에서 버려지는 귤이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인건비는 비싸고, 귤은 해걸이를 하여 한 해 많이 열리면 다음 해에는 적게 열린다고 한다. 그러니 옛날의 전성시대는 간 셈이다.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비닐하우스가 늘어가고 있지만 환경파괴의 폐해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제주도 농민을 위해서는 귤의 홍수출하를 막는 방도가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런 연구를 많이 해왔겠지만 귤의 보존성을 높인다면 제주도민을 위해서 매우 좋을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그게 소비자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소비자는 늘 귤을 먹는 즐거움을 늘 누릴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