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상록수
동백나무가 아니더라도 제주도에는 늘 푸른 상록수가 대부분이다. 낙엽 참나무도 제주에서는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수이다. 그래서 육지와 같은 화려한 단풍은 없지만 대신에 겨울에도 여전히 녹색의 잔치가 벌어진다. 더구나 상록수가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등지고 있다든지, 한라산의 흰 눈을 뒤로하고 있으면 화려함 이상의 품격이 있다. 단풍은 화려하되 생명이 짧아 안타깝지만 두툼한 나뭇잎이 꽉 차 있는 녹색의 향연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활력을 얻게 한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겨울의 나뭇가지에서는 새들이 사람 눈치 보기 바쁘다. 그러나 잎이 빽빽하게 들어찬 제주의 겨울나무에는 사람이 있건 없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가득하다. 새소리가 꽉 차 있지만 아무리 보아도 새는 보이지 않으니 신기하다. 아마도 동박새나 참새처럼 작은 새라서 그럴 것이다. 겨울의 앙상한 나무만 보다가 한겨울에도 어디에나 지천으로 서 있는 상록수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덩달아 삶의 기운을 찾을까 싶기도 하다. 더구나 맑은 하늘이 가을 같고, 미세먼지도 드문 제주도의 하늘은 폐활량마저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온대의 끝인 제주에는 야자나무도 흔하다. 비록 야자열매는 열리지 않지만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남국의 풍치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해외여행 대신에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야자나무는 가장 큰 대리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남제주라야 더 크고 다양한 야자나무를 볼 수 있다. 소철이 길가에서 이렇게 크고, 꽃도 피고, 열매까지 열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서귀포시에는 둘레길도 많고, 오름길도 많지만 곰솔 숲길이 일품이다. 홍로 흙담길을 따라 약 100미터쯤 일렬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 숲길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전국 숲길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고 하니 그럴 만한 일이다. 안내판에 백 년 전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쓰여 있으나 나무 크기로 보아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것을 것이다. 두 아름도 넘는 등치인데 지금까지 이보다 더 굵고 큰 소나무는 본 적이 없다. 육지의 금강송이나 정이품송만한 기품은 아니지만 우람한 체구는 제주의 명품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나무가 이렇게 자라온 것도 기특하지만 지금까지 숲길을 지켜 낸 제주 사람들의 여유와 지혜를 보는 듯하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상록수 중에는 녹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육지로 말하면 느티나무쯤 되는 셈인데 한 그루의 나무가 높고,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기품 있게 버티고 서 있다. 서홍동 ‘면형의 집’ 안에 있는 녹나무는 가장 크고 오래된 녹나무로 약 250년이 넘었다고 한다. 돌기둥으로 나이 먹은 나뭇가지를 받치고 어렵사리 그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몇 아름들이 등치를 타고 기생덩굴들이 올라붙었지만 어린 아기 재롱이듯 받아주고 있다. 그런 아량이 있었으니 이토록 늠름하게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이 녹나무가 석양을 뒤로 받고 있으면 그 경치가 환상적이다. 육지에서는 이렇게 크고 품위 있는 느티나무를 본 적이 없다. 녹나무는 품위만 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뇌, 나프탈렌의 원료가 된다고 한다. 다행히 요즈음엔 수요가 줄어서 제주에서는 이렇듯 장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동백과 같이 제주를 대표할 만한 나무는 먼나무일 것이다. 뭔나무인지, 먼나무인지- 이상한 이름과는 달리 먼나무는 ‘멋나무’라고 해야 적당할 정도로 멋있는 나무이다. 혹은 원래 ‘먹나무’가 잘못된 이름이라고도 하니 잘 생긴 나무치고는 잘 붙여진 이름은 아닌성 싶다. 감탕나무과에 속하고, 키는 밤나무 정도인데 자작나무처럼 희고, 두툼한 상록잎에다가 가을부터는 빨간 열매를 송이송이로 가득 달고 있다. 서홍동에 있는 먼나무는 200년이 되었다는 제주의 대표 먼나무이다. 녹나무 크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먼나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감나무는 나뭇잎을 다 떨구고 빨간 감만 달고 있을 때가 아름답다. 먼나무 열매는 감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먹을 수도 없지만 그 열매는 감보다 훨씬 아름답다. 그 이유는 빨간 열매가 녹색의 나뭇잎 사이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 열매는 저 혼자가 아니라 녹색 짙은 나뭇잎 사이에 끼어 있어야만 비로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가을 산에 단풍나무만 있다면 제아무리 빨갛더라도 아름답지 않다. 단풍 사이에 소나무의 초록이 같이 있어야만 어우러져 비로소 아름다운 단풍 숲이 될 수 있다. 미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홀로 있으면 빛이 나지 않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단풍과 먼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사 매사가 그렇지 않을까? 세상에 잘난 사람만 있다면, 똑똑한 사람만 있다면, 착한 사람만 있다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못난 이, 재주가 없는 사람, 악한 사람이 많을수록 그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잘나고, 천재에다 선량하다면 과연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행히 그런 사람이 별로 없으니 망정이지 정작 그런 사람은 행복해지기보다는 불행해지기 쉬울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기보다는 배척당하거나 겉돌기 십상이다. 그래서 조물주는 평범하거나 부족한 사람을 더 많이 만들었으며 한 사람이 모든 장점을 다 갖도록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부족함이 많다면 당연한 일이고, 그것은 오히려 내가 가진 다른 장점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단점과 부족한 면이 많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보충할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신체적인 약점이 있다면 정신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든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부리는 데 서투른 일이 많다든지, 영리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 인간세계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겉으로 보아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구분하여 함부로 가치를 매긴다면 성급한 일이다. 불리한 여건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에게서 뿐 아니라 자식에게서, 청소년에게서 장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먼나무의 덕이 적지 않다. 비록 목재로서 큰 가치는 없더라도, 그리 큰 나무는 아니더라도 빨간 열매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짙은 초록잎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게 보인다. 먼나무 말고도 제주에는 상록수로 들어차서 겨울에도 세상의 이치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