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人圖 미인도. 申光洙 신광수. (1712-1775)
墻外杏花斜一枝◎ 담장 밖으로 살구꽃 한 가지 살짝 나와서는
春心約莫畏人知◎ 물오른 춘심을 남이 알까 부끄러워하네.
無端步立春風下 봄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까닭은
却似西廂待月時◎ 달빛 아래 님을 기다리는 설렘이어라.
墻外杏花斜一枝
墻外 담장 밖으로. 杏花 살구꽃. 斜 비스듬히. 一枝 살구꽃 한 가지. 봄이 와서 담장 너머로 살구꽃 한 가지가 살짝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의도는 이 꽃은 정작 살구꽃이 아니라 규중심처에 갇혀 살던 아가씨였을 것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집 안에서 감히 바깥출입 할 생각마저 하지 못했었는데 꽃 피는 봄을 맞아 담장 위로 얼굴을 내밀고 서성이며 바깥을 내다보는 한 폭의 미인도입니다. 그러나 우선 원시로 번역해서 ‘담장 밖으로 살구꽃 한 가지 살짝 나와서는’
春心約莫畏人知
春心 봄을 맞아 설레는 여인의 마음. 約莫 몰래. 畏人知 다른 사람이 알까 무서워. 춘심은 사랑하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입니다. 추위가 다가오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집안 어른의 문단속이 흔들리는 봄처녀의 춘심마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집안 어른들이 무서워 몰래 담 밖을 기웃거려보나 바깥 사람들의 매서운 눈은 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달이 뜨는 밤을 기다려 님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꽃이 아니라 여인임을 드러내야 시인의 의도를 충실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을 맞는 춘심을 남이 알까 부끄러워하네’
無端步立春風下
無端 함부로, 마음대로. 步立 발걸음. 春風下 봄바람 따라. 무단을 ‘마음대로’라기보다는 아가씨의 발걸음은 ‘’조심스럽게‘가 더 가까울 것입니다. 바람결에 이리저리 거니는 것은 춘풍에 시숭생숭 흔들리는 여인의 춘심을 이입한 것입니다. 여인의 마음이야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겠지만 남이 볼까 무서워 살구꽃 가지처럼 목을 빼어 서성이며 몰래몰래 밖을 훔쳐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시에는 없지만 그 까닭이 다음 구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다시 꽃으로 옮겨 중의적인 효과를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봄바람 맞으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까닭은’
却似西廂待月時
却似는 닮았다. 西廂은 원래 사위나 남정네가 기거하는 집입니다. 待月時 달뜨기를 기다리다. 서방님을 書房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랑하는 님이 ‘책방에 사는 님’이라고 하기보다는 ‘西廂에 있는 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여기서야 아가씨의 서방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 바깥의 남정네는 다 서상이겠지요. 待月時는 달이 뜨는 밤을 기다리는 심정일 것입니다. 물론 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달이 뜨는 밤에 사랑하는 님을 만나자는 속셈이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여인으로 돌아와야 미인도가 될 것입니다. '달빛 아래 님을 기다리는 설렘이어라.’
이 시를 살구꽃 피어있는 봄 풍경으로만 보면 한 폭의 풍경화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시의 제목이 미인도라면 살구꽃을 '아리땁고 순진하고, 수줍으면서도 애틋한 춘심을 누르지 못하는 규중의 아가씨'로 해석해야 시인의 의도에 부합될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시인이 살구꽃을 미인으로 보았는지, 미인을 살구꽃으로 비유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대상이 살구꽃이었든지 미인이었든지 상관없이 아름다운 그림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詩想을 중의적으로 교묘히 오버랩시킨 숨씨가 뛰어난 보기 드문 한시 걸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