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33

美人圖 2.

by 김성수

美人圖 2. 미인도 申光洙 신광수


桃花扇底半面身◎ 도화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自是嬌多解惜春◎ 고운 자태로 봄빛에 취해 있는데-

盡日無言心內事 종일토록 입을 닫고 있으니

不知怊悵爲何人◎ 누구를 그리는지 알 수 없어라.


桃花扇底半面身

桃花扇은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 또는 복숭아 모양의 부채. 底는 밑 부분. 半面身은 부채에 얼굴의 반이 가려진 미인. 그러니 이 시는 한 폭의 미인도입니다. 그림 같이 예쁜 미인을 묘사한 시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림일 수도 있습니다. 도화선 부채에 그려진 복숭아는 신선의 내공일 수도 있지만 미인도에서는 桃色적인 섹시 심벌입니다. 발그레한 도색선으로 얼굴을 가렸다면 그 얼굴은 더욱 매력적일 것입니다. 전부를 드러내기보다는 도색선으로 반쯤 가리는 것이 더 마음을 끄는 법입니다. 요즈음 코로나로 해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미운 얼굴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눈은 얼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는다면 적어도 외모만은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코, 입, 턱 성형수술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화장품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마스크 때문에 화장품 업계는 불황이 심각하고, 아마도 성형과도 영향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화장도, 성형수술도 필요 없게 된다면 마스크의 이점도 없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스크로나마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세상도 훨씬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自是嬌多解惜春

自는 스스로. 是는 –이다. 嬌는 아름다움, 미모, 애교. 多는 많다. 解는 미인. 解語花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꽃, 미인 양귀비. 여기에서는 미인을 말합니다. 그러나 ‘고운 자태’에 이미 ‘미인’이라는 의미가 반영되었으니 解는 따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惜春은 봄을 아끼다, 즐기다. 그러나 이보다는 ‘봄에 취하다’로 옮기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도화선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도섹녀가 스스로 해어화를 자처하면서 미모를 한껏 자랑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주는 님이 없다면 복사꽃이 만발한 봄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운 자태로 봄빛에 취해 있네’라고 종결어미로 옮기면 다음 구에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므로 ‘-취해 있는데-’라고 연결어미로 처리하면 시의가 보다 매끄러워질 것입니다. 시의 번역은 그런 면까지 생각해야 언어의 장벽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盡日無言心內事

盡日은 하루종일. 無言 말이 없다. 心內事는 마음에 품고 있는 말 못 할 사연. 스스로 자부하는 뛰어난 미모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 가도록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 한 마디도 없는 미인입니다. 그러나 미모에 자신에 차 있던 도섹녀가 왜 갑자기 말이 없는지 한 마디 이유가 없으니 詩意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不知怊悵爲何人

不知 알지 못하다. 怊悵 슬픔. 爲何人 누구를 위하여.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슬퍼하는지 알 수 없어’라고 옮기면 시가 아닐 것입니다. 미인이 슬퍼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없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의 의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닯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하인은 ‘누구를 위하여’가 아니라 ‘누구를’이라고 옮겨야 시의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는 2행과 3행의 사이에 의미적 연결과정이 없어 시의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듯합니다. 미모에 자부심이 대단한 절색가인이 갑자기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없이 한숨만 쉬는 이유가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작품은 아닐 듯합니다. 어쩌면 절실한 시적 경험이 없이 상상적인 시여서일지도 모릅니다. 한시 중에는 이처럼 매끄럽지 못한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한시에 서툴러서이겠지만 절실한 시적 체험이 없었거나 남의 작품을 표절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미인도’라면 미인을 그린 그림을 보고 시의 解題로 붙인 작품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화에는 보통 畫題(화제)인 한시가 곁들여져 있기 마린입니다.


이백의 시 <怨情>을 보면 그런 의심이 듭니다. 但見淚痕濕 不知心恨誰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 누구를 원망하는지 알 수 없구나- 신광수는 이백의 이 시를 읽어보았을 것이라면 그 영향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한시가 중국 한시의 영향을 받은 일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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