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이 뭐길래?

정치꾼들에게 속지 말자.

by 김성수

우리 생활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스포츠를 간단히 말하면 ‘운동경기’이다. 보통 같은 말로 쓰이지만 ‘운동’과 ‘스포츠’를 구분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운동’이 건강, 체력을 기르는 활동이라면 ‘스포츠’는 운동을 규격화, 경쟁화, 상업화한 것이다. 흔히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지만 국력은 일부 선수들이 벌이는 스포츠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운동에 의해서 길러지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운동으로 건강과 체력을 길러야 국력이지, 소수의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온다고 국력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건만 우리는 메달이 곧 국력인 것처럼 말해왔다.


스포츠가 국민의 사기를 높이거나 국력을 과시할 수도 수 있으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정당치 못한 정치인들과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교묘하게 정치에 이용한다. 그런 전형이 나치, 파시스트들이고, 우리의 군사독재자들이 그랬다. 히틀러는 올림픽을 국수주의와 전쟁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우리의 군사독재자들은 독재정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그들의 스포츠 놀음에 속고, 이용당했다. 정치에서 순수한 아마추어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를 내세워 국민들을 현혹하고, 국민의 행복과 자유를 유린해왔다. 사실 엘리트 스포츠는 평범한 국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국민들의 운동기회를 박탈하기 십상이다. 국민들에 돌아갈 운동기회를 일부 선수들에게 몰아주기 때문이다. 국가선수촌이 클수록 국민들의 운동시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따온 메달은 국민의 체력이 반영된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의 운동기회와 건강권리를 독점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도 거기에 열광하고 매몰된다면 스포츠의 마력에 중독된 것이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그런 일이 많다.


지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중국의 편파판정으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온 나라가 들썩일 일이 아니다. 그것은 스포츠로 정당화한 허상이다. 그런 것에 정치인들, 대선주자들이 나서서 영합하는 것은 명백하게 국익을 해치는 짓이다. 그들이 국민의 격앙된 감정에 부채질하는 것은 스포츠를 선거에 이용하는 술수이다. 분별력 없는 언론들마저 앞장서 메달에 열광하지만 냉철히 생각해 보면 스포츠란 일과성 이벤트이다. 이벤트에 매몰되지 말고 이런 기회에 냉정하게 중국을 바라보고, 우리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의 독재와 우민정치로 중국인의 시민의식, 민도(民度)는 매우 낮은 형편이다. 그런 수준의 중국 네티즌이나 언론과 사사건건 흥분하여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스스로 품격을 떨어트리고, 국익에 손상을 입히는 짓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족의 한복이나 장구춤을 자기 문화로 소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조선족도 엄연한 중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문화찬탈이라고 흥분하는 것은 분별있는 행동이 아니다. 우리 고유문화가 중국문화로 포장된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분개할 일이 아니라 우리 영토와 동포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까?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정치인이나 언론이 올바로 이끌어 주어야 옳건만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니 가증스럽고, 저질스러운 정치 쓰레기, 언론 기레기들이 아닌가?


국익은 올림픽 메달이나 한복 김치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일과성 스포츠적 쾌감을 위해서 중국을 적대국으로 만든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이 미국보다 크며, 그들이 대놓고 북한과 결속한다면 우리의 국익과 안보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렇게 말하면 굴욕외교나 사대주의로 매도하겠지만 명분과 자존심으로 실익을 해친다면 현명한 정치외교가 아닐 것이다. 순진한 국민들이야 일시적인 감정에 치우칠 수 있더라도 적어도 정치인들이나 언론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중국에 사대, 굴욕외교를 한다고 야단법석들이다. 거기에 북한을 주적이라고 명문화하고, 사드를 더 들여놓고, 북한을 선제타격하고, 중국 어선을 격침시키겠다고 호언하는 것은 전쟁을 선동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국민을 어리석게 보는 명백한 안보 포퓰리즘이다.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짓은 부자가 깡패하고 싸우는 꼴이라서 이겨도 손해, 지면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다. 정부가 굴욕적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힘이 강해서이다. 아쉽다면 아쉬운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실리적 국익외교이다. 유독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미국에 대해서는 사대와 굴욕을 정당화하고,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사대, 굴욕이라고 들이대는 것은 모순 논리이다.


중국의 편파판정이나 문화공정에 분노하기보다는 왜 우리가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를 냉철히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중국의 탐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목표는 서구열강에 대한 복수를 하고, 세계를 제패하는 것- 이른바 그들이 호언하는 中國夢(중국몽)이다. 시진핑은 히틀러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시틀러’이다. 짬도 모르고 시틀러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은 결국 독일의 꼴이 될 것이다. 이런 중국에 맞서 김치, 한복이나 메달에 집착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도대체 메달이 뭐길래?


장기판에서 車(차)를 지키기 위해서 卒(졸)을 버리는 전략이 있고, 바둑에는 전략상 작은 미끼를 버리는 捨石(사석)이라는 것이 있다. 卒이나 버려야 할 돌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大馬(대마)를 지켜야 이길 수 있다. 수준이 낮은 중국의 네티즌이나 관제언론들과 아웅대지 말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국익을 챙기는 것이 선진국민의 자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민족의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중국, 일본에게 약자를 면할 수 없고,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인들은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우리가 경제적인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 중국을 이길 수 없고, 일본을 능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균형외교는 옳다 하더라도 아직 미국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고, 중국의 무도함에 맞설 수 없고, 일본을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처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를 과도하게 비하한 감이 없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의 스포츠 열광은 정치적인 기만의 결과이다. 대통령 깜이 없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통지자를 선택'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깜이 없는 대선이라면 혹시 깜이 안 되는 국민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죽하면 대통령후보 정책토론 방송을 제쳐두고 올림픽 중계에 열광하겠는가만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덜 나쁜 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거라고 무관심하다면 더 나쁜 놈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후보에 실망하여 선거에 무관심하다면 그들은 더 좋아한다. 무관심을 틈타 마음 놓고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우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국민이 대선이나 총선을 거부할 수 있는 법안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한다는 스포츠가 오히려 건강, 행복은 물론 국익을 해친다면 이제 올림픽 메달에, 예선통과도 어려운 월드컵에 무작정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은 대한민국이 정말 큰 나라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런 스포츠 허상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선진 대한민국을 이룰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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