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될 것인가, 종이 될 것인가?
역대 최악의 후보와 혼전의 선거라고 야단들이다. 모두들 후보들을 질타하고, 혼란한 정국, 국론의 분열을 한탄하기 바쁘다. 그러나 이런 혼란에 신물난 유권자들의 정치혐오증도 선거를 그르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선거 단골이었던 금권, 관권선거라는 말은 잘 들리지 않으니 그것만 해도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정치적인 식견이 짧아 정치 얘기를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절박한 나라의 실정을 접어둔 채 한가한 얘기만 늘어놓는다면 국민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실상을 보면 이에 동의할 수 없다. 대통령에게 제왕적 전권을 주고 나라의 운명을 5년 동안 맡기는 것은 주인이 아니라 머슴이 할 일이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5천만 분의 1의 힘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나라의 주인이기를 바란다면 복권 한 장 들고 당첨을 기대하는 수준의 망상이다. 우리에게 ‘국민이 주인’이란 구호는 기껏 전제 왕조시대의 세습권력과 절대권력에서 벗어났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라면 늘 국민의 권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져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전제 왕정시대에 통치자가 전권을 쥐고 있던 시대와는 달리 국민이 투표권을 가지고 통치자를 선출했다면 그 국민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옛말에 ‘명장 밑에 약졸 없고, 약졸 위에 명장 없다’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었다면 ‘名將 밑에 弱卒 없다’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다. 민주주의는 ‘명장의 시대’가 아니라 ‘약졸의 시대’이다. 그리고 ‘약졸 위에 명장 없다’를 ‘어리석은 국민 위에 현명한 지도자는 없다’로 고쳐야 옳다. 정부수립 이후의 혼란기 정권들은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전이므로 그들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지만 직선제에 의한 문민정부부터는 국민도 국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을 수밖에 없고, '대통령 수준이 곧 국민'이 민주주의 사회의 원리라면 지금은 '국민 굴욕, 모욕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배고파 못살겠다, 바꿔보자’라는 대선 구호가 힘을 발휘했던 시대가 있었다. 오죽 살기 어려웠으면 그런 절박하고 원색적인 선거구호가 나왔을까? 그런데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한 지금도 이 구호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면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거나 ‘정권교체’라는 선거구호가 시대착오일 것이다. ‘정권교체’는 현 정권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국제적으로 선진국임을 공인받은 현 정권을 통째로 바꾸어야 할 당위성은 크지 않다는 생각이다. 집값이 오르고, 보유세가 높아진 것은 일부 특권 부유층을 빼고는 정권을 바꿀 이유가 되지 못한다. 집값이 올라 서민들마저 집을 살 수 없게 만든 것은 실정(失政)이 분명하지만 일부 계층이 부를 독점하고, 그에 맞는 세금마저 거부하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더구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을 위한 민주정치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지켜본 입장에서 냉철히 생각해 보면 정권교체해야 할 이유보다는 현 정부가 이루어 낸 성과를 기록해야 할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내 이익보다는 국익, 눈앞의 사실보다는 역사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통째로 바꿀 때가 아니라 지키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할 때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수준은 이미 ‘배고파 바꿔야’할 절박한 시기를 지나서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안정기에는 개혁보다는 보수가 더 유용하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를 지켜낼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권을 바꾸자’라고 외치고, 정작 개혁과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권을 지키자’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의 이른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들은 사이비이다. 우리의 정권이란 그 사이비들이 벌이는 정치놀음이다.
보수건, 진보건 제대로 된 통치자를 원한다면 먼저 제대로 된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 현명치 못한 국민이 현명한 통치자를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과 학력은 세계적이라는데 우리의 의식수준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민족적인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독선과 허세에 빠질 것이다. 정치인들을 탓하기 전에 냉철하게 우리의 시민의식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대선후보 토론하는 모습을 보거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현 정부에 대한 불만과 정치혐오와 무관심으로 정말 최악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결국 그 재앙은 국민한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야 민주시민을 자처할 수 없음은 물론, 대선 후보를 경멸하고, 정치를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호보자 토론회는 가장 객관적으로 후보자들의 국정운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특히 가짜뉴스나 저질 언론들이 난무하고, 코로나로 인하여 후보자들의 유세를 들을 기회가 줄어든 지금, 후보자에 대한 국정운영능력 검증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말솜씨가 그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토론만큼 그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에 관심이 없거나 평가할 능력이 부족한 유권자가 많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세계적인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저질 언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우리 유권자의 의식수준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그럴수록 국민이 지혜와 안목을 갖고 선거 공약의 진실성과 타당성을 매섭게 살피고, 판단해야 명실상부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우수한 민족이라고 자처하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생각이다. 신명이 나면 세계를 놀라게 할 일도 하지만 감성에 치우치다 보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에서 아쉬운 면이 많다. 역사의 교훈을 쉽게 잊고, 냄비처럼 쉽게 뜨거웠다 식고, 저질 언론과 거짓 정치인들에게 쉽게 속아넘어가는 국민들을 보면 마냥 자부와 긍지를 갖기 어렵다. 국민 대비 수준이 가장 낮은 계층이 정치인들이고, 국민이 가장 경멸하는 부류도 그들이다. 그런데도 늘 그들한테 기만, 농락당한다. 그들은 말로는 국민을 호랑이라고 부르면서 하는 짓은 원숭이 도토리 먹이듯 하고 있다. 교활한 후보자들은 자신의 공약, 정책이나 토론을 정확히 판단할 유권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상대방 질문의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무지하고, 답변할 소견이나 능력이 없어도, 무례와 거짓과 억지 주장, 횡설수설을 늘어놓아도 대통령이 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믿음을 그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대선후보 토론방송은 우리에게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기회의 장이다. 대통령 중심제인만큼 大選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사이비 보수, 진보에 속지 말고, ‘바꿔야 하는가, 지켜야 하는가’를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矯角殺牛(교각살우)라는 말이 있다. 쓸 만한 소뿔을 멋있게 잡으려다가 오히려 소를 통째로 잡는 어리석음 저질러서는 안 된다.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잘못된 편견이나 일시적인 감정으로 편 가르기적 갈라치기 선동에 휘둘려서는 안 될 일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막중한 책임의식과 올바른 안목을 갖추는 것이 나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인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역사를 지켜본 어른들이 가르쳐야 할 일을 젊은이보다 더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