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소망
육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파도 멀리 보이는 섬에 가보고 싶기도 하겠지만 섬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에 가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동경이요, 소망이다. 오죽하면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것을'이라고 노래했을까? 섬이 작을수록, 살기가 고달플수록 그 열망은 더하기 마련이다. 자연의 혜택이 많지 않았던 제주 사람들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옛날에는 육지로 이주가 금지되어 있었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차별대우도 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정취와 빼어난 자연의 풍광으로 무서운 코로나를 무릅쓰고 제주도에 오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여전히 육지를 동경하는 제주인들이 많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육지에서 터를 잡고 살기를 바라고, 노인들은 육지의 의료시설을 부러워 한다. 지금도 그런 형편이니 양식마저 부족했던 옛날에야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험난한 뱃길 넘어 낯선 땅에 함부로 갈 수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민이 제주도를 떠나지 못하게 막았다. 만약에 적발이 되면 처벌을 받고, 강제로 되돌려 보내졌다. 그렇다고 제주인들의 出島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제주 신화 중에는 배를 타고 멀리 나가서 소망을 이루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제주인의 끊임없는 出島 열망의 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엄한 규제 속에서도 섬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는 그치지 않았다.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보면 제주도 난민이 등장한다. 난민의 대부분은 배를 타는 어부였다. 그들을 포작(鮑作)이라고 한 걸 보면 전복을 따는 어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섬을 나와 육지에 정착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복, 해삼, 미역, 소라 등 연안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이었다. 그 중의 여자는 따로 포녀(浦女)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250년 후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에서는 그들을 潛夫(잠부)라고 했는데 이로 보면 옛날에는 주로 남자가 물질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바다에 사는 여자'도 아닐 텐데 일제가 만든 海女보다는 좀 어색하겠지만 옛날처럼 잠녀(潛女), 포녀(浦女)라는 말이 바닷가에서 ‘물질하는 여인’으로 더 맞는 말이다.
육지로 건너간 포작들이 물질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은 포작을 군사작전 요원으로 활용하였다. 배질과 잠수에 익숙한 그들을 척후병으로 활용하고, 그들의 항해술을 활용하여 따로 鮑作船이라는 선단(船團)을 만들어 중요한 수군 전력으로 삼았다. 제주도의 어부들이 나라를 지키는 선봉에 선 것이었다. 그렇다고 포작들이 항상 좋은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일본군과 내통하여 이중 스파이짓도 하였고, 탈영도 했고, 장삿속으로 법을 어기기도 했다. 그러나 충무공은 그들을 적절히 대우하여 주요한 전력으로 삼았다. 충무공은 전략상 제주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군수 공급지로 활용하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제주도를 군량 공급처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제주에서 기른 소를 군량(軍糧)으로 받은 일이 몇 차례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제주목사는 양대수(楊大樹)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원래 두만강 녹둔도 전투에서 공을 세운 전우였므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충무공은 포작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제주도민이 육지에 정착할 수 있었다. 충무공은 장군으로서만이 아니라 목민관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다. <일동장유가>에서 부산포에서 물질을 하는 잠부(潛夫)도 포작의 후예였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두모악’은 제주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특히 울산에 정착한 포작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예부터 울산은 전복 진상지로 이름이 났는데 그것은 두모악들이 전복채취에 종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모악을 한자로 頭無岳, 頭毛岳. 豆毛岳 등으로 적기도 하였는데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렵지만 아마도 한라산의 고유어를 한자로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두모악은 제주인의 출도 의지와 제주인의 육지 정착을 입증하는 말이다.
제주도의 섬 탈출은 본의 아니게 이루어진 일도 적지 않았다. 배를 타고 나가 난파를 당하면 조류(潮流)에 의해서 일본, 또는 중국, 유구로 표류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애를 써서 돌아온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낯선 타국 땅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도에 남자가 적은 이유이다. 근대에 와서 6.25와 4.3사건은 많은 제주도인들을 고향에서 쫓아냈다. 특히 좌익으로 몰린 사람들은 일본으로 밀항하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을 좌익 조총련에 가입하게 만든 일은 가슴 아픈 민족사이다.
지금은 출도를 열망하는 사람 못지 않게 入島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 관광열풍은 제주의 위상을 높여 놓았다. 코로나를 무릅쓰고 들어오는 제주관광 열기는 제주개발 열풍으로 불고 있다. 덕택에 제주도민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은 높아졌지만 제주개발의 열풍은 또한 제주의 앞날을 위협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은 자연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넘쳐나는 쓰레기 오물은 제주의 자연경관과 토질, 수원, 지하수를 급속도로 오염시키고 있다. 거기에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중국 자본 유치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가 중국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지금 한창 제2공항 신설을 설계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인 이익에 눈이 어두워 생태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익집단은 이에 열중하고 있으니 제주를 위해서 크게 염려스러운 일이다.
제주인들은 이제 출도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아름다운 제주를 지켜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한번 파괴된 환경은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 땅이 넓고, 집이 크면 다른 곳으로 옮겨 살면 되지만 좁은 섬에서는 옮겨갈 곳도 없으니 지금 내가 지키지 않으면 당장 내가 살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 챙기지 말고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생태계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제주 탈출을 막고, 살기 좋은 제주를 만드는 것임을 제주인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