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학살의 역사적 교훈
올해가 제주 4.3 사건 74주년이어서 제주에선 사건 이래 가장 성대한 희생자 추념식이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그동안 추진되었던 희생자 보상을 실행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할 것을 다짐하였다. 칠십 년이 넘어서야 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총리를 비롯한 대통령 당선자도 이례적으로 참석하여 희생자에 대한 예우와 보상과 지속적인 희생자 찾아나서기를 다짐하였다. 유족대표도 정부의 보상 활동에 감사의 표시를 했고, 추념식도 성대하게 진행되었고, TV로 전국에 중계되었다. 마치 이제 4.3의 쓰라린 상채기가 치유되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실 4.3 사건은 역사적인 비극이었으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역대 정부로서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과오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그것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극이 벌어진 지 5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국가의 과오를 인정하였고, 그리고서도 또 20년이 넘어서야 물질적인 보상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니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였다.
그러나 정작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과정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으로 역사가 바로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4.3 사건은 비단 그 희생자나 당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근대사에 걸친 흑역사였다. 정부 요인과 전국에 중계된 추념식이라는 일과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될 쓰라린 비극이었다. 진정한 역사적 대처는 일시적인 사건의 뒤처리가 아니라 그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金剛(금강)같은 교훈을 벼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의 가해자를 찾아내어 역사적 심판을 내려야 옳겠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미 사라졌으니 그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정부와 사회에 대한 평가는 지금이라도 올바르게 매겨져야 한다. 그리고 역사는 정권이나 일부 지도층에 의해서만 이루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나 언론도 역사에 동참하였으므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4.3의 진정한 반성은 그 희생자에 대한 성대한 추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재평가와 깊은 반성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 그런 기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총리나 대통령 당선자, 도지사, 유족대표, 추모시 등 어떤 추모사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물론 당대 정권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 조심스러운 면이 많겠지만 치부를 감추고 덮어서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당시의 신생 정부의 혼란과 미숙을 인정하더라도 역사적 평가는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념에 매몰되었던 역대정부로서는 국가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반공정책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공 이념이 민족의 역사와 정의에 우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는 민족의 공생과 번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과오나 치부를 치열하게 반성하고, 엄정하게 시정해야 옳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현대사에는 무의식과 편견에 의하여 본말이 전도된 역사적 오류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쌓여 있다.
4.3 사건이 당시 제주도민의 10%에 달하는 목숨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는 사실만 강조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 강점기에도 없었던 그런 끔찍한 비극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당시 전국 어디에서나 벌어졌던 일이다. 그 역사의 일부인 4.3 원혼 희생자에 대한 보상, 배상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당대의 정권, 지도층, 언론, 국민 모두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교훈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대의 역사부터 바르게 기술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런 역사의식이 있었다면 조국분단을 선언한 이승만 정권 수립일을 건국절로 부른다든지, 민족상잔의 비극을 막지 못하고, 부정부패 독재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그를 국부(國父)로 받들어 모시자는 부끄러운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4.3 폭동’ ‘4.3 사태’라고 불렀던 것이 우리의 몰지각한 역사의식이었다. 지금의 ‘4.3 사건’이라는 명칭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엄청난 비극이 어찌 하나의 사건에 그치는 일인가? 그렇다고 의거도 아니고, 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이념이나 목적을 위해서 투쟁한 것이 아니라 이유도 모르고 쫓겨 다니다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6.25 때 거창의 양민들처럼- 그렇다면 차라리 ‘4,3 학살’이 더 사실에 부합되는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부를 수 있어야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역사를 바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 하나부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역사를 바로 매김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