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신사

건전한 자동차 문화를 위하여

by 김성수

운전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있기 마련이다. 요즈음은 대개 보험회사에 일임하지만 전에는 당사자들이 수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니 일이 벌어지면 서로 핏대를 세워가며 살벌하게 다툼을 벌이기 마련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줄 알면서도 고분고분하면 더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일단 우기고 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조금만 유리한 듯 싶으면 전에 있었던 차 흠집까지도 보상 받을 기회로 삼다 보니 현금을 요구하거나 과잉수리로 상대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흔했다. 과잉수리가 보험수가를 올리는 요인이지만 거기까지 생각한다면 바보되기 십상이다.


내가 초보운전일 때만 해도 자가용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접촉사고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중고차를 몰았기 때문에 사소한 접촉사고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실수로 다른 차를 긁고 나서 수리비를 물어주다 보니 속이 매우 쓰렸다. 그래서 내가 피해를 입더라도 그냥 웃어 넘기니 오히려 속이 편했다. 긁힌 곳에 또 좀 찌그러지더라도 별로 눈에 거스리지도 않았다. 그저 적당히 스프레이를 뿌려두면 그만이었으니 인심 후하게 쓰고 고맙다는 칭송을 받는 쾌감이 더 컸다. 어차피 볼품없는 중고차야 아무래도 좋았다.


언젠가 신호대기 하는 중에 웬 봉고 트럭이 뒤를 받았다. 가벼운 접촉이었는데 그 사람이 급히 내려와서 미안하다고 사죄하면서 지금은 돈이 없으니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입금해 주겠다고 정중히 말하였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었지만 그날은 별 생각없이 번호를 적어 주었더니 며칠 후에 통장에 몇 만 원의 돈이 들어와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다 보니 그 사람이 하던 말이 새삼스러웠다. 복숭아 공판장에 시간 대려 서두르다 보니 사고를 냈다는데- 아마도 농장 주인이거나 심부름이었을 것이다. 범퍼가 좀 찌그러졌다고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한테 가혹한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수리비를 받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차피 돈들여 수리할 것도 아닌데- 그러나 그 사람 연락처도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한번은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다가 옆의 중고 승용차 범퍼를 살짝 스쳤다. 칠이 약간 벗겨졌지만 내 기준으로 말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 때는 CCTV도 없었기에 그냥 가도 괜찮을 상황이었지만 알량한 양심에 내 연락처를 그 차에 남겨놓았다. 얼마 후에 점잖고 교양미 넘치는 아줌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락처를 남겨 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나보고 하나님 복받을 거라고 축복하더니 차를 정비공장에 맡겼다고 말했다. 나는 당연한 일이기에 미안하다는 인사까지 차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낡은 범퍼를 구태여 새 것으로 교체해서 생각지도 못한 바가지를 쓰게 되었다. 누가 봐도 범퍼를 통채로 바꿀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빌던 그 교양 넘치던 아줌마가 신사의 양심을 이용하여 범퍼를 새것으로 바꿀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낡은 차에 범퍼만 번쩍이는 차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을까? ‘정직하면 손해’라는 마귀의 법칙을 입증시킨 여편네였다. 지난 복숭아 트럭이 생각나면서 나는 절대로 이런 인간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여편네라도 나의 스승이라고 했다.


언젠가 아파트에 주차한 내 새 차 후미등에 약간의 접촉 흔적이 있었고, 시간이 없어서- 라면서 고맙게도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새 차였지만 내 기준으로 말하면 소동을 벌일 일이 아니었다. 전화를 걸어 별 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자기는 바빠서 동행하지 못하니 꼭 정비공장에 맡겨 달라고 했다. 아마도 맞벌이 부부일 것이고, 몇 번 더 흠집이 생기면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더 경제적일 것이었다. 더구나 내가 당했던 일을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몇 번이고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또 몇 차례의 전화 독촉이 있었지만 끝내 사양하였다. 더구나 바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인데-


얼마 후에 문 앞에 과일 상자가 몇 개나 놓여 있었다. 메모를 보니 내 차에 흠집을 남긴 사람이었다. 당황하여 연락을 했더니 부담이 되어 견딜 수 없었으니 수리비 대신으로 받아달라고 했다. 전에 신앙깊은 척하던 여편네를 생각하니 이 아줌마야말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사를 천사 대접한 나도 신사는 되나 싶었다. 나는 과일 상자 하나를 들고 그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 집은 1004호- 바로 천사의 집이었다. 그런데 그 천사는 교양있는 말투도 아니었고, 미모의 여인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 교리 책에서 보았던 천사의 날개도 없었지만 요즈음의 천사는 저런 모습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바꾼 차도 주인을 잘못 만나 벌써 흠집이 여럿이다. 차가 밀려 정지상태였는데 어떤 차가 운전석 문에 와서 슬쩍 부딪쳐왔다. 당연히 사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를 나무라는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얼핏 보니 나보다 나이가 더 들고 점잖아 보였다. 화도 났지만 큰 흠집도 아니어서 현장 사진을 찍고 그냥 가라고 했다. 천사는 못되더라도 신사는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 노인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보험처리를 할까 하다가 나도 손해고, 저 사람은 더 큰 손해이니 역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천사는 몰라도 신사일 듯싶었다. 어차피 차는 소모품이지 않은가? 좀 보기 싫으면 어떤가? 차만 번쩍거리고 지저분한 주인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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