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놓자

by 김성수


나이가 들면서 운전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내 사정만은 아닐 것이다. 기운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운전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 까닭이다. 하기야 기운이 떨어지다 보면 감각도 자연히 그렇게 될 것이니 당연한 노화현상이다. 신호등이 느리게 바뀐다든지, 앞차가 꾸물댄다든지, 없던 차가 사각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오는 일이야 옛날에도 그랬지만 빤한 빨간등을 못볼 때가 있다든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것이 늦어진다든지, 좌우를 살피는 것을 자주 잊는다든지, 주차가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든지, 차를 자주 긁어먹거나 접촉사고를 낸는다든지 – 이런 현상들은 옛날에는 좀처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한마디로 상황판단력이 둔해진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엑셀을 밟아 대형사고를 내는 일이 남 일 같지 않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운전을 하지 말라는 말이 점점 절실해진다.


그런데 늙으면 운전기능만 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운이나 일반적인 운동기능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운전이야 앉아서 핸들만 만지는 것이라 힘이 떨어졌어도 지금껏 버텨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힘보다는 상황판단력이 문제이다. 비단 운전의 상황판단력만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모든 기능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전(運轉)이란 말을생각해보면 자동차만 모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몬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운전대만 놓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인생의 운전대까지 놓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여러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선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는 것이 그렇다.


노인들은 흔히 경험과 경륜을 내세워 어른 노릇을 하기 좋아하지만 노인은 나이만큼 현명해지지 않는다. 현명하지 못하면 경험과 경륜은 올바로 작동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기는커녕 점점 어리석어지고, 기억력, 판단력, 지각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노인은 혈관만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도 점점 좁아진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스스로는 마음이 너그럽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노인의 기억력이 좋아지는 법은 없건만 자신의 기억을 과신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나이 들어 기력이 좋아지는 노인은 없건만 여전히 젊은이보다 더 많은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기를 좋아한다. 사리 판단력이 좋아지는 노인은 없건만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며 행동하는 노인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폐현상이 늘어난다. 설령 사고의 융통성이 넓어지는 노인이 있다 해도 나도 그런가? 그보다는 착각과 편견이 더 많지 않을까? 한번 머릿속에 들어가면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 과거의 기억은 대부분 고정관념과 선입견, 고집으로 굳어있지 않은가? 그러니 남의 의견을 듣는 척 하지만 결국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이가 칠십이 넘으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라고 권장하는 이유가 있다. 운전하다가 교통법규 위반 벌금도 적지 않겠지만 사고를 내 보험료도 대폭 할증되기 십상이고, 인사사고라도 내면 택시 타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롭고, 편안한 노년이 될 수 있다. 좀 불편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면 그것처럼 편안한 것이 없을 것이다. 정 그러기가 서운하면 이제는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조수는 운전자의 심부름이나 할 일이지 간섭하거나 잔소리를 하면 안 된다. 혹시 아직 운전에 자신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불안해 하니 다소 억울하더라도 운전대를 놓는 것이 사회의 요구라면 기꺼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운전만 그런 게 아니라 매사에 그래야 한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항변하겠지만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천덕꾸러기를 면치 못한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천덕꾸러기로 푸대접을 받는다면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주책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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