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위하여
나라 살림이 좋아지면서 ‘먹고사는 것’에서 ‘맛있게 먹는 일’이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각종 언론매체에 요리강습, 맛 기행에 관한 얘기들이 넘쳐나고, 전국의 맛집은 핸드폰 안에 다 들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식감(食感)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食感이란 말은 간단히 ‘입맛’이다. 입맛은 옛날부터 우리가 즐겨 쓰던 말인데 왜 새로 식감이라는 낯선 한자어가 유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설령 요리사들이 요구하는 전문용어라 하더라도 기존의 ‘입맛’ ‘씹는 맛’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구태여 식감이라고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내 생각만이 아니라 국어는 ‘우리의 얼’이라고 하는 것이 중론이다. 지구촌, 글로벌의 시대인지라 외국어가 우리 언어에 들어오는 현상을 덮어놓고 배척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과다한 외래어는 원만한 언어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어의 소통을 위해서는 당연히 우리 고유어를 보존하고 확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입맛’을 제쳐두고 ‘식감’이란 새로운 한자어가 유행하는 일을 모른 체하기 어렵다. 한자말도 우리말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자도 소통장애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지금 있는 한자어만 하더라도 신세대들한테는 소통장애가 심각하다. '사흘'과 '四日'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니 언어소통이 될 리 없다. 기왕에 우리말로 굳어진 한자어야 어쩔 수 없다손치더라도 새로운 단어는 가급적 고유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자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식감’이란 새로운 한자어를 찾아보니 우리 사전이나 중국에는 없었던 것이니 일본말에서 온 듯하다. 일제 잔재 청산을 부르짖는 판에 전에 없던 일본어를 새삼스럽게 유행시키는 풍조가 반가울 리 없다. 더구나 일본의 식도락 문화가 들어오다 보니 식감이란 말도 함께 묻어왔다고 생각하면 더 켕기는 일이다. 마땅한 대체어를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더라도 엄연히 우리 고유어가 있음에도 구태여 일본어를 새로 들이미는 행위는 지각없는 짓이다.
곁들여 생각하면 고유어나 우리 한자어로 대체가 가능한 일본식 단어가 즐비하다.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는’ 거중기(擧重機)란 우리 한자어를 버리고, ‘짐이 일어난다’는 이상한 기중기(起重機)란 일본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노견(路肩)‘이란 해괴한 일본어가 ’갓길‘이란 훌륭한 고유어로 대체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린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植木日은 죽은 나무 木이 아니라 살아있는 樹를 심어야 하므로 식수일(植樹日)로 해야 마땅하다. 이는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구분 없이 ‘나무’라고 한 데서 온 기현상이다. Air-poart를 번역한 공항(空港)도 ‘공기 항구’ ‘빈 항구’라는 글자이므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단어이다. 중국어로는 機場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우리로서는 불만이다. 한 글자가 많지만 아예 고유어로 ‘날틀곳’이 어떨까 한다. 비행기는 본래 ‘날틀’이었고, 장소인 場은 ‘곳’으로 좋을 것이다. 이런 신조어가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본래 이상했던 일본식 한자어를 남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다. 아직도 우리의 법조계를 비롯한 각종 관용어(官用語)가 일본식 한자어로 도배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속이 편치 않다.
일본이 서양문화를 앞서 받아들여 서양의 문명어를 한자로 번역한 일을 못마땅하게만 생각한다면 ‘문화적 열등감’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당 부분은 그들이 만든 한자어를 업적으로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식감’ 처럼 불필요하고, 무감각한 한자어가 유행하는 풍조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지각있는 민주시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