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29

신호등 없는 제주도의 건널목

by 김성수



서귀포 시내거리 건널목에는 신호등이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어떤 곳은 제법 교통량이 많아서 그냥 길을 건너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육지에서는 이보다 교통량이 훨씬 적은 건널목에서도 어김없이 파란불을 기다려야 했는데 여기에선 알아서 건너가야 하니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 지나고 보니 그 자유로움과 편리함이 훨씬 좋았다. 만약에 사고가 많다면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 민주시민의 자유라고 한다면 제주도의 건널목은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이다.


차량통행이 한산한 건널목에서조차 신호등을 착실히 지키다 보면 짜증날 때가 많았다. 뭐 크게 바빠서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도 아무 일 없는 건널목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다 보면 개인으로서는 시간낭비요, 국가적으로 보면 국력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신호등을 착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통행이 한산한 신호등을 보면 시민의 안전보다는 책임회피성 시설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에는 눈치를 보아가면서 적당히 건너가곤 했다. 신호등이 있거나 없거나 알아서 건너가는 중국인들의 무질서가 무지해서일까?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들은 필요없이 신의를 지키는 것을 尾生之信(미생지신)이라고 비웃는다. 미생이란 사람이 다리 밑에서 여자와 만날 약속을 지키려다 갑자기 물이 불은 홍수에 떠내려가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규칙에 얽매어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는 행동을 墨守(묵수)라고도 한다. 원래는 묵적(墨翟)이라는 사람의 수비전략을 말한 것이지만 흔히 융통성 없는 행동을 비유한 말이다. 한산한 건널목에서 꾸물대는 파란불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 보면 尾信과 墨守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었다. 신호등 없는 제주도 건널목에 신선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준법정신이 흐린 탓일지도 모르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을까해서 위안이 된다.


규칙이나 법률보다는 자유가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누구나 자유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법률에 얽매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규칙과 법률이 사람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역사를 보면 거꾸로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통치자들은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변한다. ‘인간을 위한 법인가, 법을 위한 인간인가’를 생각하면 간단히 결론이 날 일을 ‘법이 인간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은 권력자들의 억지에 세뇌당해온 결과이다. 전혀 반대 개념인 자유와 법치를 마치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을 보면 국민을 우습게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국민은 자유와 법치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고 법에 맹종하는 사람들은 지배를 당해야 안심이 되는 노예 심리와 닮은 데가 있다. 법치란 인간을 성악(性惡)으로 간주하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고, 그것은 국민을 얕보는 우민정치(愚民政治)와 닮아있다. 법이 위세를 떨치던 시대는 항상 어지러웠고, 법을 잊고 사는 국민이 행복했었던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道家가 말하는 이상은 無爲自然(무위자연)이었고, 無法(무법)이었다. 법치를 내세워 입맛대로 압수수색과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명백한 ‘법의 악용, 남용’이다. 내 눈의 들보는 눈을 감고, 오로지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법치는 후안무치의 불법집단이다. 역사적으로 법과 독재는 공생해왔으며 그 공통점은 국민을 무지렁이로 본다는 것이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권은 필경 나라와 국민을 막장으로 몰고 간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정치인들이 함부로 얕보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나저나- 신호등이 없는 제주도의 건널목이 법을 이긴 자유가 실현된 곳이라면 지나친 허풍이겠지만 그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법 없이 사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해서 흐뭇하다.

작가의 이전글食感이 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