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이 기가 막혀

광복절과 독립기념관

by 김성수


우리 근현대사에서 ‘독립’이란 단어에는 뼈에 사무친 사연이 스며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로서는 단군 건국 이래 당연한 독립국임에도 근래 새삼스럽게 독립기념관이 지어졌으니 이상한 일이다. 마치 구십 노인이 돌잔치를 벌인 꼴이 아닐까? 설령 단군건국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건국의 역사가 최소한 이천 년이 넘은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근래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것은 '광복'이지 결코 새로운 '독립'이 아니다. 그러니 독립기념관이라는 이름은 생뚱맞은 이름이다. 이러구러 사십여 년을 버텨온 ‘독립기념관’을 문제 삼는것을 엉뚱한 트집잡기라고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만큼 우리 역사의식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正名論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이름에는 정당한 명분과 의미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역사적인 이름이라면 거기에는 역사적 의식과 평가가 담겨 있기에 더욱 그렇다.


숭고한 항일 독립투쟁의 역사를 기리고자 거국적인 노력으로 기념관을 세운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이름이 '독립기념관'인가? 얼핏 이름만 생각하면 본래의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란 의미는 나타나 있지 않고, 마치 근래에 ‘처음 독립을 이룬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다.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처음 들으면 마치 우리나라가 1945년 처음 독립한 신생 독립국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도 외국인은 우리나라가 오래 전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인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들의 무지를 탄식하기 전에 우리가 독립국임을 무색케 하는 역사가 실재했으며, 우리도 2차세계대전 후 독립한 다른 나라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역사가 짧은 미국이 독립기념일을 성대하게 치른다 해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도 덩달아 ‘독립’이란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의 독립이야 영광스러운 이름이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의 '독립'은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독립'이란 말에 '망국'이란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면 이는 우리 스스로가 약자였음을 드러내는 이름이 아닐까?


과연 '독립기념관'이란 이름에는 우리의 허약한 역사의식이 깔려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8.15 광복절'을 '독립일'과 동일시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일제치하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목놓아 절규했던 쓰라린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름 그대로 광복절은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날’이고, 독립기념일은 ‘독립을 처음 이룬 날’이므로 같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복절과 독립기념일을 구분하지 못함은 물론, 아예 이승만 정부수립일을 건국절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으니 참으로 역사 앞에 황망한 일이다. 백보 양보해도 그것은 신생정부 대한민국에 해당할 뿐, 반만만 년 역사의 건국은 절대 아니다. 국민들은 나라를 세운 건국절이란 곧 개천절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이승만 정부가 건국정부라면 그 이전의 우리 역사에는 건국도 없었고, 나라도 아니었단 말인가? 개천절은 그냥 전국민이 공짜로 노는 날일 뿐이었나?


더구나 이른바 건국정부의 내력을 생각하면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사정이 어쨌든 어떻게 북한보다 먼저 나라의 분단을 선언한 남한정부를 건국정부라고 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고 부를 수 있는가? 미소협약을 조국분단과 정권을 잡는 데 이용한 정부에게 건국의 영광과 국부의 영예를 부여하는 것이 올바른 정신인가? 당시에는 무지한 정객들의 기만에 속았을망정 지금껏 그 부당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역사에 부끄러운 국민이 아니겠는가?


연일 승리를 장담하다가 하룻밤에 국민과 서울을 버리고 한강을 건너서 도망치고 다리를 끊어버린 것이 건국정부와 국부가 할 짓인가? 젤렌스키는 못되더라도 부산도 모자라 비행기를 타고 허겁지겁 미국으로 도망친 것은 조선의 선조도 하지 않았던 치욕스러운 짓이다.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받고, 장기집권을 하고서도 세계 최빈국을 면치 못하게 한 것이 누구인가? 사사오입 개헌을 하고,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독재정치를 한 대통령을 국부요, 민족분단일을 건국절이라고 부른다면 우리의 역사는 무엇이 되는가?


이런 주장을 서둘러 좌경, 종북으로 단정할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독립운동으로 바친 상해임정 애국지사들을 무참히 제거하고, 친일파 인사들이 수립한 해방정부를 건국절로 정당화하는 것이 우경, 보수의 역사관인가? 이승만 정부가 '불의가 정의를 이긴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근대사는 분명 잘못된 역사이다. 적어도 우리의 근대사에서는 정의는 불의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로 어떻게 후손에게 정의를 가르칠 것인가? 실종된 정의와 공정, 답답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금의 사태에서 뼈저린 반성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이제라도 본래의 역사를 살려 독기념관이 아닌 ‘광복기념관’으로 불러야 한다. 이는 단순한 이름타박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역사를 기술하는 일이다. 당시에도 이런 의견이 많았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허약한 역사의식 때문일 것이다. 마땅히 광복절에는 광복기념관에서 기념식을 해야 명실상부한 일이다. 애들 이름 하나도 공을 들여서 짓는데 하물며 민족의 역사적 기념관 이름을 허투루 짓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후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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