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은 정치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원시사회에서는 치세(治世)의 책임이 하늘에 있었다. 날씨, 기후에 의해서 모든 나랏일의 성패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큰일(大) 보다 더 큰 존재가 하늘(天)이었을까? 그때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늘과 자연에 따라 살아가는 방도를 찾는 것일 뿐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리인인 제사장을 뽑았고, 제사장이 통치자가 되었다. 나중에 제사장이 왕이 되고, 왕권이 확립되면서 치세의 책임은 하늘에서 왕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왕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신하들이 치세를 분담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대가로 권력과 책임을 나누어 가졌다. 그 뒤로부터 그들은 책임보다는 권력을 잡기에 열중하였다. 인지가 늘어나면서 엘리트 식자층도 그 대열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백성은 권력도 책임도 없이 하늘과 권력자들을 원망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근대에 들어서 국민의 교육,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성립되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말한다. 민주주의를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적은 없다. 그러니 민주주의라도 국민은 다만 '나라의 주체'라고 하는 정도가 옳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나라의 주체가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려면 국민 스스로가 나라를 이끌어갈 능력과 수준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왕조시대의 '어리석은 백성'과는 달리 지금은 국민이 주체가 되었으니 권리도 국민에게 있고, 그 책임도 국민에게 있다. 그런 각오와 능력이 없으면 나라의 주체가 될 자격도 없고,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민주주의 사회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니 이제는 정치가 그릇되어도 옛날처럼 하늘이나 통치자만을 원망할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통치자만 비판하고 몰아세우기 일쑤이다. 그러나 우리가 투표로 정권을 선출했다는 것은 국정의 책임도 져야 함을 의미한다. 다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통령을 뽑은 유권자는 그렇다. 그러나 그 책임이 자신에 있다고 인정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과거 해방정국이나 군사독재정권 시절엔 아직 국민의 교육, 경제 수준이 모자랐으니 정부에 복종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책임도 그들에게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그 책임을 통치자에게 돌린다면 아직 우리가 민주주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신생 정부로서는 일찍이 유례가 없었고, 부분적으로는 정권 말기 현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심각한 사태이다. 그만큼 윤 대통령의 국정능력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국정 능력은 선거 전에서부터 이미 드러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국민이다. 혹 전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서였다면 그 책임은 문재인 정권한테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검찰총장에게 검찰개혁을 바랐다면 할복자살을 요구한 것과 다름이 없다. 검찰개혁도 이루지 못한 채, 독이 오른 검찰총장을 살려두고서 후환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참 어리숙한 통치자였다. 그렇더라도 사람을 감옥에 가두기를 필생의 목표로 삼았던 검사가 유능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개꼬리가 황모 되기를 바란 것이다. 선거 토론 과정에서 정치적 안목과 식견이 모자라 쩔쩔매고, 상대방의 말귀마저 못 알아듣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각종 비리, 투기, 사기, 논문 표절, 괴소문이 떠돌았던 여자를 일국의 영부인을 만들었다면 민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구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당시 대통령 부부와 인척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스스로가 선출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권리와 책임을 다 포기한 국민이 아니겠는가?
민주시민이라면 권리나 불평불만을 내세우기 전에 책임과 의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유와 권리만 내세우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타락한 자본주의나 개인주의자일 뿐이다. 민주시민이라면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더구나 역사의 퇴행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실패한 과거의 정책을 되풀이한다는 데에 있다. 신자본주의, 시장 만능주의, 낙수(落水) 효과 신봉, 부자 감세, 편 가르기, 편향적 외교정책 등은 이미 실패를 거듭한 뼈아픈 역사적 자산인데 또 다시 이를 되풀이한다면 역사적 퇴행이 틀림없다. 그도 모자라서 전 정권에 대한 보복과 뒤집기 정치, 책임떠넘기기로 일관한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찌 될 것인가?
현명한 국민이라면 잘못된 정부의 정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지혜란 우선 정치인들이 참으로 국민을 무서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국민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어리석게 보는 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론은 사회의 목탁으로서 국민의 의식을 깨우고, 권익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시민의 힘이다. 그런데 우리의 타락한 언론은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 노릇에 바쁘고, 저질적인 가짜 뉴스가 판을 치니 국민이 스스로 현명해질 수밖에 없다. 자유와 법치주의를 같이 말하고,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면서도 국민만을 바라본다는 정신 나간 거짓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통치자에게 나라를 맡긴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러석은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국정의 책임이 국민에게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 민주시민의식이요, 집단지성이다. 우리가 빠르게 민주주의를 신장시켜 왔지만 아직 선진국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작금의 사태가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 글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면서도 민주시민이라고 차처할 수 있는가? 경제소득만으로 민주주의와 민주시민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정치없는 경제는 바람 앞의 등불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