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 돌아와서

어제도 틀렸고 오늘도 틀리다.

by 김성수

나를 가르쳐 준 학교를 모교라고 한다. 아버지의 입장으로는 좀 서운한 얘기지만 父校라고 하지 않고 母校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옛날의 시에는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라고 했지만 그것은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나온 말이고, 나를 배 아파 낳고, 가슴 아프게 기른 분은 어머니가 틀림없다. 그래서 母情이요, 母校라고 했던 것이다. 母자도 어머니 젖가슴을 상형한 글자이고, 만질 것도 없는 아버지 가슴에 털이라도 났다면 더구나 모교라는 이름이 훨씬 정겹다. 어머니도 생모가 있는가 하면 계모, 서모, 양모, 유모도 있다. 모교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있지만 국민학교가 가장 가까운 어머니이다. 국민학교가 가장 그리운 것은 첫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치원이 없었던 옛날에 국민학교는 나를 처음 가르쳐 준 첫사랑이다. 첫사랑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첫사랑인 국민학교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학교가 더 그리운 이유는 나를 가장 오랫동안 길러 준 학교이기 때문이다. 기껏 3,4년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비하면 두 배 가까운 긴 세월이다. 더구나 학교수학 기간이 짧았던 사람에게는 첫사랑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학교가 더 그리운 이유는 그때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꼭 훌륭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때 선생님이 가장 존경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과 교사의 지적인 격차가 줄어들어 존경하는 마음이 가시기 마련이다. 고등학교쯤 가면 실력을 따지고, 인격을 따져 선생님을 존경하기는커녕 무시하고 깔보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국민학교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고, 변소마저 갈 것 같지 않은 선생님이어서 국민학교가 더 그리운 것이다. 그러고 보면 스승에 대한 존경은 스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추억으로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더 정겹지만 그 이름은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름만 바꾼다고 일제의 잔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소학교라고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러면 중학교, 대학교가 일관성이 있는 명칭이 될 것이다. 개교 백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러 60년만에 모교에 돌아와 보니 학교 이름이 초등학교로 바뀌어서 서운한 생각이 든다. 교실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고, 나무도 훌쩍 크고, 흙 교실 대신에 현대식 실내체육관도 생겼으니 문패를 바꿀 만도 하겠지만 모교가 발전했다기보다는 생모가 계모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전교생을 통틀어도 한 학급도 안 된다니 더 발전한 모교는 아닌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처음 학교에 들어서서 가장 놀란 일은 운동회 때면 그렇게 넓었던 운동장이 겨우 아파트 앞마당만 하고, 천지를 흔들 만큼 우렁찬 소리로 영차를 외쳤던 솔밭이 겨우 부잣집 정원만해진 것이었다. 이 앞마당만한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데 그렇게 힘이 들고, 넘어져 무릎이 까졌단 말인가? 이 좁은 솔밭에서 어떻게 천 명이 넘는 애들이 모여 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보다는 왜 옛날의 기억과 지금의 현실과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가 의문이다. 운동장도, 솔밭도 분명 옛날 그대로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차이는 순전히 내 감각의 착오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감각의 착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아마도 나의 소견과 경험과 안목이 그때보다 깊고,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의 일들이 유치하고,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은 것은 지금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장이 좁고, 솔밭이 좁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동산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옳고, 사리에 맞는 것일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처럼 지금도 감각의 착오로 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식견, 사고, 경험, 안목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 옛 성현 말씀대로 日新又日新-나날이 새로워지고,- 覺今是而昨非-어제는 그르고, 오늘이 맞는 것이라면 당연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이 모교의 운동장 솔밭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제도 틀렸다면 오늘도 틀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이다. 졸업한 지 육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모교에 와서 다시 배워가는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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