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2

by 김성수


요즈음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많이 하는 말이 드물 것이다. 과연 남녀 간의 사랑도 좋고, 존경하고, 아끼고, 그리스도적인 사랑도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들어서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특히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종교적인 사랑이 그렇다. 그런데도 ‘사랑한다’는 말이 흔한 것을 보면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거나 사실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세상인심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을 보면 ‘입치레 사랑’일 가능성이 많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이라는 의미가 좀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미워하지 않을 정도만 되어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요즈음은 교양스러운 유행어로까지 흔해서 사랑의 감동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사랑합니다’보다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좋은 말 중에는 ‘고맙습니다’ 라는 말도 있다. ‘사랑합니다’는 베풀어야 하는 특별한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지만 이 말은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하고, 겸손만 있으면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이렇게 좋은 말을 말하기 꺼려하고, 그런 마음이 부족했던 것 같다. ‘고맙다’는 쉬운 듯하면서도 정작 고맙게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교만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고,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일이 내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고마운 마음이 생기기 어렵다. 고마워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옳다는 독선부터 없애야 한다.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고마운 마음을 갖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는 원망과 남 탓하기 마련이다. 스스로 불만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을 과신하거나 자학하는 것을 ‘자포자기(自暴自棄)’라고 한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존중하기 어렵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기보다는 남에게, 사회에, 운명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고마운 일이 있을 수 없다. 혹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에 바쁘다면 남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 같다.


매사에 나보다 잘난 사람보다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하고 살면 매사가 고맙다. 다리 아픈 사람은 아플 다리마저 없는 사람보다 고맙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세상에 나보다 불행하고, 조건이 나쁜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불행하다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행복과 불행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욕심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없지만 만족하고 겸손하면 행복하고, 고마워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너스레가 무슨 새로운 일도 아니라서 평범한 사람들도 다투어서 해온 말이다. 다만 우리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조금씩 그럴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마도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여우가 신 포도를 포기한 꼴일 수도 있다. 이제는 그 신 포도를 꼭 따먹어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 애써 따 보아야 실제로 신 포도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저 포도만큼은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들과 똑같이 먹고 챙기려 하는 것은 탐욕이다. 더구나 그들에게 양보를 바라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어른의 도리가 아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인 궁핍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이제 그들은 물질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하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어렵게 살았지만 늙어보니 지금의 젊은이들은 더 어렵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의 노년은 지금의 우리들보다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늙은이들의 탐욕 때문에 저들의 불행이 커지는지도 모른다.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원자력발전을 확충해야 하고, 지금의 편리만을 생각해서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그 재앙은 모조리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늙은이들은 모두들 오래 살려고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후손들에게 부양과 연금과 건강보험의 부담을 지워주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이 먹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 늙은이들은 참 좋을 때에 태어났다고-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나서 고생했지만 인류 멸망이 오기 전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우리는 참 고마운 세대라고- 퇴영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라고 할 테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비록 나이가 들어 기운이 떨어지고, 병이 끊이지 않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외롭더라도 그럴수록 살 날이 적게 남은 것이 다행스럽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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