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법치주의

법치주의는 독재정치와 멀지 않다.

by 김성수

바야흐로 지금은 법치의 시대이다. 법이 세상의 정의요, 진리인 듯이 말하고 있다. 法이라는 글자의 내력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法이란 ‘水가 흘러가는(去)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法이다. 老子는 上善若水(상선약수) - 최고의 선은 물이다. - 라고 했으니 물은 ‘최선’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이 아래로만 흐른다고 생각했던 상고시대의 일이고, 그것이 통치자의 법률(法律)로 제정되었을 때는 인간을 옥죄는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물이 순류(順流)를 어기고 역류(逆流)하듯이 법은 이미 上善의 존재가 아니었다. 더구나 법이 통치자에 의해서 공정과 엄정을 잃어서는 그것은 편리한 통치의 수단이었을 뿐 국민에게는 가혹한 올가미요, 족쇄로 변질되었다. ‘법대로 하자'라는 말은 원래 법으로 시비를 가름하지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누가 위법과 탈법을 더 잘하는지 겨뤄보자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죄의 유무보다는 증거의 有無가 판결의 기준이 되었으니 아무리 죄가 많더라도 증거만 감추면 '사람을 죽였어도 살인은 아니다.'라는 해괴한 판결이 흔하다. 이른바 법치의 시대에 정작 法의 정의와 존재가치가 무너져버린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법 집행자들의 세상이 되어 그들 말대로 법치주의 세상이 된 것 같지만 오히려 법의 공정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있다. 야당에게는 법조문을 샅샅이 뒤져 압수수색을 밥먹듯이 하지만 자신들에게는 법률이 한낱 제삿집 북어대가리가 된 지 오래이다. 이것이 그들의 법치주의라면 대통령만 자유로운 自由法治일뿐이다. 그런데 대통령보다 더한 법치주의자가 있으니 법치의 수장인 법무부장관이다. 그는 자유법치주의를 넘어선 자의(恣意)법치자이다. 자유법치가 법을 근간으로 법을 선택적으로 운용한다면 자의법치는 법조문을 완전히 자의적으로 재해석하여 멋대로 적용하는 것이니 그 수법이 훨씬 영악하고, 교활하다. 자유법치는 그래도 기존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용하지만 자의법치는 설령 법률이 있다 해도 정권의 입맛대로 ‘시행령'을 새로 만들어 거침없이 법률을 무력화한다. 하위법령으로 상위 법률과 법제정신을 무용지물로 만드니 이는 명백한 하극상이요, 법률쿠데타이다. 이렇게 되면 無法의 혼란이 오거나 超法(초법)의 독재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가 혼란이냐, 독재통치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하면 호들갑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미 법률독재는 시작이 되었고, 법률은 모든 통치의 기반이므로 독재정치가 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法無二門(법무이문)이란 말은 법조문을 존중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 운용의 원칙이다.그러나 이는 우리의 자유, 자의 법치자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법이란 집권자가 자유,자의(恣意)로 해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 의해서 法出多門(법출다문) - 법의 해석은 다양하게 해야 한다. - 라는 말이 생긴 지 오래이다. 과연 법이란 시대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하고 적용되어야 한다. 법이란 원래 당대의 상황에 맞추어 원칙을 규정한 규칙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이란 본래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보다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기 마련이다. 법정에 판사 말고, 변호사가 있고, 다단계의 재판소에서 판결을 달리하는 이유이다.


이를 기화로 해서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왜곡, 변질시켜 적용시키는 자들이 횡행했으니 이를 舞文弄法(

무문농법)이라고 한다. 舞文이란 법조문을 막춤 추듯이 마음대로 흔들어대는 것이고, 弄法이란 법률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다. 현 정부는 법치주의를 내세웠지만 상대를 골라서 선택적으로 적용시키고, 기존의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기에 법치를 파괴하는 무문농법자들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오히려 법치를 허물어뜨리는 위법, 탈법자들이다.


지금 수사대상이 되어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전직 관료와 야당 인사들이 범법을 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전직 대통령의 통치행위까지 자유, 자의법치로 징치하려 든다면 舞文弄法(무문농법)에 감옥 가지 않을 대통령, 관료가 어디 있겠는가? 하기야 죄 없는 자가 어디 있으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 것이 정부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검사들의 믿음이다. 중요한 일은 법으로 정적을 징치를 하자면 최소한 집행자는 법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법을 엄정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법의 위엄이 서고 사회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 똥 묻은 개를 나무라려면 자신은 겨라도 묻어서는 법의 권위가 서지 않는 일이다. 이것이 전직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에 실패한 이유이다. 그런데 똥 묻은 처지로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면 이는 양심도 없는 반도덕적인 철면피가 틀림없다. 지금 정부에서 전직 관료와 정적들을 처벌하려 든다면 그런 꼴이 아니겠는가? 대통령과 그 친인척의 대들보는 덮어두고, 야당 인사의 터럭 같은 죄를 밝히려 든다면 차마 人心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도 마땅히 얽어맬 구실이 없어 법출다문, 무문농법으로 옭아매려 하는 짓을 방관한다면 나라는 무법천지가 되고, 이를 핑계로 벌어지는 독재체제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은 군사독재에 대해서는 두려운 줄 알지만 검찰독재에 대해서는 아직 무서운 줄 모른다. 아직도 그들은 늘 합법적으로 정치를 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와 법치는 정면으로 상치되는 개념인데도 자유법치를 내세우는 정부에 정상적인 통치를 기대하는 국민은 현명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곧 독재를 동반한다는 역사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 통치철학 부재나 경제와 외교에 대한 미숙, 정치보복, 뒤집기 정치, 근거 없는 우월주의, 법치의 획일주의의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정권은 그 탈출구로 전쟁이나 독재라는 비상수단을 택했음을 역사가 증명하여왔다. 법치주의자나 군사파쇼는 매우 닮아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강아지 미워서 호랑이 부르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이야말로 위기가 틀림없다.

작가의 이전글손주 바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