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 아닌 인재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특급 태풍 ‘힘난노’가 지나갔다. 요란했던 기상예보보다는 덜했지만 생각보다는 피해가 컸던 것 같다. 특히 지하주차장에서 안타까운 희생자가 많았던 일은 전에 없던 비극이었다. 그 죽음으로 인해 홍수에 대한 새로운 대책이 마련될 것이기에 피해자라기보다는 희생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과연 그 죽음에서 더 큰 계기를 마련해야 그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흔히 이번 피해를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인재라고 해야 옳다는 생각이다. 천재냐 인재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불가항력이면 천재, 그렇지 않으면 인재라 하면 될 것 같다. 어쨌든 과학이 발달하면서 천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지금 이상기후에 의한 재해는 불가항력에서 벌어지는 天災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태풍도 인간들의 탐욕에서 벌어지는 환경파괴에서 빚어지는 것이라면 하늘만 탓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회피가 아닐까? 앞으로 이보다 더 심각한 재해가 더 참혹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고하고 있는데 천재로 미루고 책임회피만 한다면 자해행위에 가깝다. 환경파괴와 탄소배출이 이상기후의 주범이라면 이번 태풍도 결국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재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재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임시방편에 그칠 것이 뻔하다. 차를 빼라는 방송을 한 아파트 관리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이는 일개 관리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하천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행정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고, 그보다는 자연재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우연히 포항에서 벌어진 일일 뿐, 전국 어디에서나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환경파괴에 앞장선 인간 모두에게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재해가 벌어진 날 퇴근을 두고 시비가 벌어진다든지, 대통령이 입은 민방위복을 가지고 궁시렁대는 것은 일의 경중을 모르는 짓이다. 그래서야 인재에 대한 올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니 정치인은 헛소리를 하면서 생 쇼나 벌이고, 언론은 ‘장님 장 구경시키기’나 하는 것이다. 국민은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장 구경을 가 보아도 다른 사람 말을 듣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기에 가짜뉴스, 사이비 언론들이 판치고 있으니 국민은 늘 도청도설에 속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회구조이다.
자연재해를 인간재해로 인식해야 제대로 된 재해대책이 설 수 있다. 그 대책이란 먼저 환경파괴를 멈추는 일이다. 인간의 편리와 경제적 이익만 따져서는 자연재해를 막기는커녕 인재를 키울 수밖에 없다.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대체에너지로 바꾸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인재를 줄이는 길이다. 그런데 핵무기를 다투어 개발하고, 당장의 편리와 효율만 따져서 핵발전을 늘려간다면 자연재해와 비교할 수 없이 참혹한 ‘핵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우리의 미래와 후손을 위해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핵발전을 당장 폐기는 어렵더라도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일 것이다.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이번에 느낀 일 중의 하나는 ‘국어의 재난’이다. 견문이 적어서인지 ‘월파’란 말을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각종 매체에서 월파란 말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으니 당황스러운 일이다. 추측컨대 ‘월파’란 ‘방파제를 넘은 파도’- 越波일 것이다. 두 글자라서 언어의 간결성은 좋아 보이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국민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언어의 경제성도 좋지만 소통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더구나 한자 말이 분명한 말을 한자표기도 없이 냅다 ‘월파’라고 하면 의사전달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는 본래의 의미를 다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말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너울'이란 고유어도 있고, 한 글자만 더하면 ‘큰 파도’ '너울파'로 본래의 의미를 훌륭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낯선 말 중에서 차수벽이란 말도 있다. 한자어 ‘물을 막는 벽’- 遮水壁이다. 한자의 정확성, 경제성은 충분히 알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한자어를 갑자기 한글로만 사용한다면 소통이 되지 않을 것이다. ‘벽’은 쉽게 소통되는 말이니 차수벽을 ‘물막이 벽’이라고만 하더라도 어렵지 않은 단어가 될 것이다. 한 글자만 더하면 될 것을 왜 그리 어려운 말을 만들어 내는지 모를 일이다. 한자가 싫으면 한자어를 쓰지 말아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한자를 가르치지도 않고, 한자어를 한글로만 써대면 참 무책임한 짓이다. 우리 언어에 이런 말을 일일이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이상한 말을 마구 쓰지 말고 처음부터 우리말로 표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매체의 책임도 있지만 ‘국립국어연구원’이라는 국가기관도 있는데 무슨 일이 바빠서 이런 일에 손을 놓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도 ‘언어의 인재(人災)’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