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45

by 김성수

卽事 즉흥시

辛永禧 1442-1551


打麥聲高酒滿盆◎ 보리타작 노래 흥겹고, 술은 동이에 가득 한데

老人無事臥荒村◎ 노인은 한가로이 마을에 누워있다가-

呼兒室下遮風幔 아이 불러 바깥에 바람막이 치고,

恐擾新移紫竹根◎ 요란함이 싫어 다시 대밭으로 옮겨간다.


打타麥맥聲성高고酒주滿만盆분

打 때리다, 타작. 麥 보리. 보리타작. 聲高 보리타작 하는 흥겨운 매김소리가 높다. 작년에 농사지은 쌀이 떨어지는 시기가 춘궁기입니다. 그래서 보리를 수확하는 농가가 즐겁고, 흥겹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酒 술. 滿盆 동이에 가득하다. 그러니 술 동이에는 농주가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老노人인無무事사臥와荒황村촌

老人 노인. 시의 주인공. 無事 일이 없음, 한가함. 보리타작이지만 노인 양반은 일이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臥 눕다. 그냥 한가하게 누워서 보리타작하는 모습을 구경한다고 했습니다. 일은 없더라도 같이 보리수확의 기쁨을 누리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입니다. 荒村 황량한 농촌. 그러나 분위기로 보다서 황량한 농촌일 것 같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흥겨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소박한 농촌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래야 다음의 정경과도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荒은 한시의 글자를 맞추려는 수단으로 돌리고, 따로 번역하지 않는 것이 시인의 의도에 더 맞다는 생각입니다. 노인의 행동은 다음 구에 이어져야 하므로 종결어미보다는 연결어미로 ‘누워있다가’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보통 한시의 구조로 말하면 여기에서 종결어미로 처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경우는 노인의 행동이 중심이 되므로 연결어미가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呼호兒아室실下하遮차風풍幔만

呼兒 아이를 부르다, 시키다. 室下 방 아래, 집 바깥. 遮風幔 바람막이 차일, 천막, 가리개. 한창 보리타작에 바쁜데 아이 시켜 집 바깥에 차일천막을 치게 한다면 지금 같아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겠지만 옛날의 노인 양반 같으면 그럴 수 있는 일이겠지요.


恐공擾요新신移이紫자竹죽根근

恐 두려워, 걱정되어, 싫다. 擾 시끄러움, 번거로운. 타작하는 소리가 시끄럽다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동이겠지만 옛날의 양반들은 그랬을 것입니다. 新移 새로 자리를 옮기다. 집 안에서 잡 밖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입니다. 紫竹根 보랏빛 대나무 뿌리, 새로 나온 죽순입니다. 그러나 구태여 ‘죽순이 솟은 대밭’이라기보다는 그냥 ‘대밭’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시도 역시 전원한정을 읊은 시입니다. 물론 시인은 노인이기는 하지만 뜨거운 여름날에 보리타작에 바쁜데 애들 시켜 천막을 치게 하고 시원한 대밭으로 가서 바람을 쐬는 모습이 그저 좋아보이지는 않기도 합니다. 더구나 양반이라면 노동자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더욱 그렇습니다. 옛날 양반계급의 한계요, 오늘날 특권층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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