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에 대하여

인구절벽은 윤리의식의 회복이 근본적 대책이다.

by 김성수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단언컨대 인구는 곧 국가의 미래요, 국력이다. 문화수준과 관계없이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인도가 강국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보면 우리의 인구절벽은 어떤 문제보다 가장 시급한 국가위기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를 보면 거기에 정신을 쏟을 능력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겨우 정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선거공약에서는 ‘나라를 위해서’를 되뇌었지만 그에 걸맞은 능력과 국정철학은 없고, 오로지 ‘집권’만을 노린 이익집단에 불과했음을 지금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언론도, 국민도 절박한 위기의식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있다손 치더라도 기업이익이나 개인의 행복이 우선했으니 합당한 대책도, 의지도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서구에서 우리나라의 소멸을 염려해 주고 있으니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은 한국은 인구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인구절벽의 본질을 모르고 있으니 그에 대한 올바른 대처가 나올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개선은커녕 급속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구절벽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다. 하기야 돈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안 하고, 못한다고 하는 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렇다고 돈으로만 결혼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리석다. 그렇기로 말하면 직업이 안정되고, 경제적인 수준을 갖춘 젊은이들은 결혼하고, 출산을 많이 해야 옳다. 그러나 그런 사람 중에서 거침없이 비혼주의를 선언하고, 30대 결혼이 대세이고, 40대 초혼이 이상하지 않고, 둘이만 잘 살자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는 어떤 금전적인 지원도 소용이 없다. 우리의 인구절벽에는 경제적인 문제 말고서도 도덕윤리적인 가치관의 문제가 개재되어 있음을 알아야 근본적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본주의 가치관으로는 지금의 인구절벽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럴 수 있었다면 서구 선진국들은 아예 인구위기를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결혼을 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신성한 의무요, 권리라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결혼과 출산을 낡은 인습이고, 개인의 행복을 해칠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사회를 위해서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가치관으로서는 공동체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신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인구절벽은 해결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민족의식, 사회윤리를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금전적인 보조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설령 그렇더라도 돈을 뿌리는 안이한 대책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 출산, 육아, 교육에 들어가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는 제도정비가 더 효율적이다.


좋기로서는 금전적인 대책을 넘어서 우리의 윤리와 사회문화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극단적 개인주의,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이는 인구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기본윤리를 외면한 채 인구절벽이 해결된들 세상은 지금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수행해야 할 도덕윤리적 의무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학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교육비를 최대한 줄여주는 것은 그 다음의 차선책이다. 육아와 교육, 취업노동의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녀의 교육비로 평생 허덕여야 하는 지금 같아서야 누가 선뜻 결혼하고, 기꺼이 출산하고, 육아와 교육을 시킬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지금처럼 학벌과 신분에 의해서 임금이 정해진다면 대부분의 부부는 애를 낳는 것에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인구절벽이 아니더라도 임금과 노동의 대가는 당연히 학벌이 아닌 본인의 능력에 의하여 주어져야 옳다. 임금이 오직 학벌이나 신분에 의해서 정해진다면 국민은 능력이 아니라 학력에만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겪고 있다. 대학진학률이 8할이 넘어서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국력, 인력의 낭비요, 출산의 장애물일 뿐이다. 정작 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인재나 직종은 소수인데도 전 국민이 대입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젊은이를 좌절시키는 비극이다. 유아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졸업하는 데 드는 엄청난 학비는 웬만한 부모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생뚱맞은 소리 같지만 우리의 잘못된 임금체계가 인구절벽의 주범이라는 생각이다. 능력위주의 임금체계를 갖춘다면 입시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고, 교육비의 부담을 덜어주면 기꺼이 결혼해서 출산을 할 것이니 이야말로 인구절벽을 해결할 대안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스스럼없이 교육의 강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구절벽의 주범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잘못된 교육이다.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좋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물질만능주의는 정신적 후진국을 만들었다. 이미 그 한계가 입증된 신자본주의, 반사회적인 개인주의, 이기주의, 맹목적인 학벌주의가 판치고, 통치철학의 부재와 양극화, 불신, 보복, 무능력-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인구졀벽을 야기하는 주범임을 깨닫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 아닐까 싶다.










\\\\










































청소에 대하여


우리는 백의민족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다. 흰옷을 즐겨 입는 우리 민족은 그렇게 깨끗하고 순박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별히 깨끗한 마음이나 청결한 습성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지만 지금으로 보아서는 그럴 만한 기미를 찾지 못하겠다. 우리 정부의 청렴도는 세계적으로 하위수준이다. 중국인들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일본인에 비해서는 그럴 자신이 없다. 일본인들이 근대화 이후 서구의 영향을 받아 개선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사람들의 식습관이나 음식, 거리를 보면 더 위생적이고, 청결하다. 일본인들이 체질적으로 질병에 약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체질이 강해서 청결하지 못하다는 말은 자랑이 아닐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 말이겠지만‘우리가 흰옷을 즐겨 입어 온 것은 마땅한 염료가 없어 원단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거나 그들이 상대적으로 합리적 사고를 할 것이라는 짐작은 친일파여서인가?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화려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은 것은 그들의 권모술수, 다중적 성격, 의뭉스러워서 그런 것인가?

요즈음 거리를 지나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가 특별히 청결한 민족이라는 자신이 서지 않는다. 한때 우리의 거리나 공공장소가 매우 깨끗하다는 자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청결은커녕 매우 지저분하다는 생각이다. 얼핏 우리의 문화수준이 후퇴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래서야 우리가 우습게 보는 중국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우리의 거리와 공공장소는 매우 깨끗했었다. 정부의 인위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그전에도 우리는 청소와 청결, 정직을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쳐 왔다. 특히 학교교육에서 그랬다. 학교에서 인성, 예절, 정직, 공중도덕, 협동, 봉사, 희생, 애국애족 등을 열심히 가르쳤고, 집에서 청소를 하지 않는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억지로라도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그 정신을 이어나가다 보니 집안은 물론 거리나 공공장소가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이 청소하는 일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위생적으로는 물론이고, 교육적으로도 청소를 시켜야 옳지만 집에서 청소를 해보지 않은 애들이 학교에서 청소를 할 리 없고, 설령 학교에서 강제로 청소를 시키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부모도 드물다. 그런 애들이 사회에 나와서 청소, 청결을 소중히 생각할 리 없다. 청소는 고사하고 휴지 쓰레기를 아무데나 마구 버리는 일이 흔하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그런 행동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이나 거리낌이 없는 듯하다. 이런 현상이 어디 청소, 청결뿐일까? 앞에서 간단히 열거한 인성, 도덕윤리 교육 전반에 걸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왜 지금이 교육의 위기인지, 나라의 위기인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를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인성도 좋을 리 없다는 말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까지도 부정해도 될지 모르겠다. 하나를 보면 열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은 논리적 오류일지 몰라도 윗이빨이 있는 짐승은 뿔이 돋아날 가능성이 없다. 청소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공중도덕은 잘 지킬지, 남을 배려할 수 있을지, 청백리가 될 수 있을지, 더구나 봉사와 희생정신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청소를 하찮게 보거나 그 시간에 공부에나 열중하고, 청소를 구시대의 유물로 단정하고, 품을 사서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청소는 ‘인성의 표지판’이라고 한다면 쉽게 곧이듣지 않겠지만 내 경험으로 말하면 청소를 잘하는 학생은 성실한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대개 틀림이 없었다. 청소교육을 하지 않는 학교가 인성교육은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집에서도 시키지 않는 청소를 왜 학교에서 시키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학부모는 집에서 자식을 사람답게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공부만 잘해서 일류대학을 나오고 출세를 시키면 그것이 자식을 행복하게 만들고, 자신도 행복할 것인지 묻고 싶다. 청소가 능사라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청소 잘하는 사람이 불행한 가정과 사회는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하는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청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