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가 많으면 과오가 적어진다.
후회(後悔)에 대하여
후회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특히 후회하는 일이 많다. 후회란 글자 그대로 일이 지난 후에야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생각건대 후회가 많은 이유는 판단력이나 임기응변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상황에 부딪쳐 판단력, 임기응변이 좋은 사람을 순발력이 좋은 사람, 또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능력이 뒤떨어지는 편이니 순발력도 부족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 못 된다.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듯이 나에게는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했다. 순발력, 판단력이 모자란 대신에 끈기와 집중력을 갖추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임기응변과 대처능력이 떨어져 매사에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판단이 서서는 항상 남에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왜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는 그렇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그리 어리석고, 미련했을까? 이러다 보니 늘 까마귀처럼 까-까-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에 닥쳐서는 그걸 잊는다는 것이다. 나름 스스로 옳고, 바른 판단이라고 여기지만 지나고 보면 늘 그렇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성격이 조급하고 과격하고,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잦다. 그래서 숨이 막힐 정도로 부끄럽고, 가슴저린 후회로 땅이 꺼지도록 한숨짓는 일이 많다. 후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늘 도로아미타불이다. 머리 나쁜 사람은 평생 고생이라니-
나는 입학을 일찍하여 보통 다른 친구들보다 나이가 1-2년이 어렸다. 오뉴월 하루 햇빛이 어디냐고 나이가 어린 만큼 철도 늦었다. 그래서 남보다 항상 생각이 키만큼 짧았던 것 같다. 학교생활은 나이가 아니라 학년에 의해서 이루어지다 보니 생각이 항상 남보다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 학년의 보호막도 없어진다. 요즘 사회에서는 연배, 학번, 나이, 연공, 경력 – 그런 것들을 따지지 않고, 묻지도 않는다. 더구나 지금은 능력위주의 시대이니까- 오히려 빠른 학번은 사회생활에서 하잘것없는 자존심만 부추길 뿐이었다. ‘네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나는 대학생이었다’라고 생각하면 그럴 만한 실력도 없으면서 터무니없는 자존심과 부질없는 자괴감이 앞섰다. 그것은 사회생활에서 오히려 독이 되었다.
후회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위안도 해 보지만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설사 지금의 판단이 옳다고 자신하더라도 결국은 후회스러운 일이 되어버리니 딱한 일이다. 옛날에는 나이가 들면 순발력 대신에 통찰력이나 상황판단의 지혜가 늘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 머리가 굳고, 판단력은 무디어지고, 노인의 편견과 고집으로 지혜는커녕 점차 불통의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다행히 은퇴 후 사회활동이 크게 줄어들다 보니 후회하는 일이 줄기는 했으나 내 지혜가 늘어서가 아니라 과오를 범할 상황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후회를 줄이는 길은 그런 계기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늙을수록 사회활동을 많이 하라는 충고는 활력있는 노년을 줄지 몰라도 자칫 남에게는 폐를 끼치고, 나에게는 후회를 더해 줄 것이다.
순발력과 임기응변에 약한 것을 지금에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억지로 부족한 순발력과 임기응변을 채우기 위한 노력 대신에 타고난 아둔함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그나마 현명할 것이다. 거창한 ‘無爲(무위)의 도리’가 아니더라도 하는 일이 적으면 더 큰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새겨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한가한 일에 끼어들지 않으며, 언행을 삼가며, 감정을 다스리다 보면 그만큼 후회를 덜 하게 될 것이다. 젊었을 때에 내가 하는 일이 옳고, 후회하는 일이 적었다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자만과 혈기에 스스로 잘못을 잘 몰랐거나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후회가 잘못을 줄일 수 있다면 지금 후회가 많은 것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후회를 '뉘우치다'로 생각하면 오히려 미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굼뜸과 아둔은 나를 지켜주는 호신부(護身符)이다. 후회를 많이 하다보면 신중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잘못을 저지르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반대로 후회가 적은 사람은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그만큼 개선의 여지도 적어질 것이다. 국민들 앞에서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실정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 그들은 후회도, 반성도 없기에 개선의 여지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과오는 필경 나라와 국민에게 위해를 끼친다. 그런 자들을 나무라기보다는 그런 자들을 선출한 우리의 집단몰지각을 후회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했다면 후회는 곧 죄이다. 더구나 살 날이 많지 않은 처지로서 남에게 죄를 짓는 것은 그야말로 후회막급(後悔莫及)- 씻을 수 없는 후회를 안고 죽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후회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로는 합리화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