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아직도 살아있다.
우리나라에서 야생호랑이가 멸종된 지 백 년이 가깝다고 한다. 단군신화에서부터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한 호랑이가 우리 산천에서 사라진 것이다. 비록 단군을 낳은 것은 곰이지만 우리는 곰보다 호랑이를 더 신성시하고 숭배해왔다. 사찰에서도 산신각을 차지하고 있고, 신화 전설이나 동화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였다. 그런 존재가 우리 산천에서 사라졌으니 신화가 우리의 꿈과 이상이라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나는 내 눈으로 야생 호랑이를 보았거니와 적어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일본에도, 중국에도 없는 우리만의 호랑이가 살아있다고 믿는다.
1974년 나는 강원도 휴전선 백암산 근처에서 자대생활을 시작하였다. 해 짧은 가을, 저녁을 먹고 혼자서 단풍이 든 부대 뒷산으로 산보를 나갔다. 한참 등성이를 타고 골짜기를 내려가는데 앞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몇십 미터 앞에서 얼핏 큰 송아지만한 짐승이 후닥닥 튀어나가더니 골짜기를 쩌러렁 울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휴전선에 송아지가 있을 리 없으니 산짐승이겠는데 확실히 보진 못했지만 그렇게 육중하고 날쌘 동작으로 한 소리에 온 골짜기를 뒤흔들 수 있는 짐승이란 호랑이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나서 거기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허겁지겁 부대에 들어와서 호랑이를 보았다고 하니 어설픈 신병의 어이없는 말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그마저 졸병이 혼자 산에 갔다면 무슨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더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그 후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호랑이, 아니면 표범 목격담을 말해봤지만 원래 군대 이야기를 곧이듣는 사람은 별로 없는 법이다. 괜히 실없는 사람이 될 뿐이어서 안타깝지만 달리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에 ‘국민은 호랑이와 같아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정치인이 있었다. 그러나 야생호랑이의 존재를 믿지 않듯이 서슬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그 말을 곧이듣는 정객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공자(孔子)가 ‘폭군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라고 해서 그런지 폭군들은 도무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 어쩌면 우리 호랑이는 가혹한 정객들이 무서워 자취를 감추었는지 모른다. 荀子(순자))는 일찍이 국민은 물(水)과 같아서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저들은 그야말로 물 같은 소리라고 코웃음을 친다. 세상의 물이 합쳐 홍수를 이룬다면 모르지만 물을 갈래갈래 갈라놓는다면 도랑물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일찍이 우리 국민을 남북(南北)으로 갈라놓더니 이어서 동서(東西), 남녀(男女), 노소(老少), 세대(世代), 빈부(貧富), 노사(勞使), 보혁(保革)으로 갈라놓고서 갈라진 국민을 입맛대로 주물러왔다. 민심의 지표인 여론조사마저 거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다 보면 통치를 할 수 없다고 무시하는 것이 요즘 정권의 담대한 배짱이다. 그들은 어용언론을 거느리고, 콘크리트 국민 30%만 틀어쥐고 있으면 나머지 70%는 설령 다수의 민심이라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 0.7% 의 승리로 70%의 국민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그들에게 선거나 국민의 여론이란 이 또한 흘러가는 물에 불과한 것이다.
다수의 민심을 억누르고 통치하려면 필연적으로 독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의 생리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려면 정치적인 능력과 아울러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만 실제로 정치가 중에 그런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설령 그런 조건을 갖춘 통치자도 권력의 맛에 빠지게 되면 독재라는 편리한 방법을 택하기 마련이다. 다수 야당의 가당찮은 저항이야 대선불복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탈탈 털어내서 구속시키면 그만이다. 전직 대통령도 일거에 두 명씩이나 감옥에 보냈는데 잔챙이쯤이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다는 것이 검사들의 믿음이다. 어리석은 민심이야 갈라치고,속이고, 구슬리면 제풀에 주저앉는 민초(民草)들일 뿐이다. 그들은 이러한 전가(傳家)의 통치술과 우리 국민의 냄비근성을 잘 알고 있다. 세월호도 세월이 가면 잊히는데 이태원 참사 그 또한 지나갈 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小(소)자는 물을 둘로 갈라치는 모양을 그린 글자이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 끊임없이 국민을 갈라 쳐온 우리의 정객들은 필경 대한민국을 갈라진 물줄기처럼 왜소하게 만들어왔다. 국론을 모아 국력을 기르는 데 전력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적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이러한 기만적 망국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법치(法治)라는 것도 오로지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금 똑똑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스스로의 범법에 대해서는 그토록 자유로운가? 법치주의가 무서운 것은 합리를 가장한 독재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합법과 합리는 유사어 같지만 별개의 사안이다.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은 악법이지 악리(惡理)가 아니다. 설령 악법이 아니더라도 악한 자가 법을 운용하면 악법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많다. 법치와 독재는 공생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진시황도, 일제도, 히틀러도, 시진핑도, 김정은도 다 법을 내세워 독재를 휘둘렀다. 국민이 이들의 저열한 술책에 놀아난다면 대한민국은 결국 ‘小韓法治國(소한법치국)’이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려면 국민은 호안(虎眼)을 부릅뜨고 나라를 똑똑히 지켜보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험난한 국제정세,밀려오는 경제위기,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벌이는 저들의 내로남불 정치보복, 뒤집기 정치, 진영논리에 나라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전쟁도, 망국도 불사하는 매국적 정치꾼들에게 행여 자유, 정의, 공정, 번영을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국민일 수밖에 없다. 호랑이 전설은 아직 국민의 마음 안에 살아있고,성난 물은 언제든지 배를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의지를 저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