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기가 막혀

by 김성수

우리 아파트의 울창한 정원수는 늘 커다란 위안거리였다. 이 아파트로 이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파트 공간을 가득 채운 푸르른 나무들이었다. 앙상한 나무가 억지로 서 있는 새 아파트보다는 나무가 우거진 중고 아파트가 값도 싸고 좋았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도 무성한 정원수만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나무마다 다른 열매를 달고 있어 좋았고, 그 틈바구니로 찾아와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는 늘 나를 즐겁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놈들이 차에다 멋대로 똥을 싸대는 횡포를 부려도 그것을 닦아내는 수고보다는 그 노래소리를 듣는 즐거움이 더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인부들이 난데없이 전기톱을 들고 몰려와서 나무들을 마구 잘라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나뭇가지가 창문을 가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로 말하면 나무가 창문을 가려도 답답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무와 새를 보는 즐거움이 더 컸지만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니 나무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다 싶어 더 할 말이 없었다. 하기야 아침에 새소리가 시끄러워 잠이 깬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으니 나 좋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면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공터에 혼자 자리 잡고 있는 굵은 나무까지 잔인하게 밑둥까지 잘라내거나 앙상하게 뼈대만 남겨놓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쫓아가서 다그쳐 물어보니 이번에는 CCTV가 가려져서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시원하게 쳐내니 보기 좋지않느냐고 반문한다. 세상에는 이런 인간도 있구나 싶었지만 한참 분을 참다 보니 나와는 달리 그럴 사람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사람마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면 어쩔 것인가? 곁에 있는 아파트 경비원을 보니 나무가 없으면 낙엽 쓸 일도 없으니 최소한 저분들은 좋아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나로서는 여간 서운하고, 화가 나는 일이 아니었다. 이 꼴을 보자고 중고 아파트로 이사왔단 말인가? 갑자기 이 아파트에 대한 애착이 사라져 버렸다. 그보다 세태가 이렇다면 내가 유별난 늙은이가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대로 내 생각을 포기한다면 정말 삭막한 세상이 될 것 같다. 최소한 상식적인 변명이라고 해서 공감을 얻고 싶다.


나무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준다. 나무가 없다면 지구는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무는 넘쳐나는 이산화탄소를 소화해 주기 때문에 지구의 허파라고도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무의 덕성을 예찬한 글들이 많아서 새삼스럽게 다 들어 말할 수조차 없다. 그래도 나무의 덕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기에- 예로부터 十年植樹(십년식수) 百年人樹(백년인수)라고 했다. 십 년의 설계는 나무를 심는 것이고, 백 년의 설계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에 있다는 말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도 했다. 나무심기가 당장 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후손을 위해서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선조의 베풂이라고 여겨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나무 자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식물이지만 무참히 잘린 나무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한 후진국에서는 식량을 생산하기 위하여 원시림을 파괴하는 것은 이래저래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식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숨을 쉴 수 있는 산소이다. 인간은 당연히 먹기 전에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나무는 베어낼 것이 아니라 심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특히 오래된 고목일수록 보호수, 천연기념물로 정해서 보존하기에 힘써왔고, 신령이 깃들어 당산나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무를 심기는커녕 걸핏하면 잘라대기 좋아하는 요즈음 사람들은 아무래도 인정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무는 목재로서, 땔감으로서 유용한 자원이기도 하니 나무는 베어져야 하는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원으로 활용하기 전까지는 가꾸고, 보존해야 옳다. 한자로는 살아있는 나무는 樹라고 하고, 베어낸 나무는 木이라 구분하고, 영어로는 Tree와 Wood로 다르게 말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구분 없이‘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나무 심는 날을 植木日이라 하는데 본래의 의미로 말하면 ‘말뚝 심는 날’이 되어 우습게 된다. 나무에 대한 어휘가 부족한 것은 우리가 나무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이고, 그래서 우리는 나무를 함부로 잘라대는 못된 습성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우리가 나무의 가치를 모르고 함부로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에서 벌거벗은 산을 나무로 채운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 전에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는 먹고 살기에 바빠서 나무의 소중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브라질 사람들처럼- 그런데 아직까지도 나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사유림이라도 지구의 허파를 마구 잘라내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공원의 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가로수도 마음대로 잘라내서는 안 된다. 아파트 정원수는 아파트 주민의 위안의 공간이요, 자산이다. 저층 주민들은 나뭇가지가 베란다를 가려서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주민들은 나무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러니 일부 주민의 말만 듣고 함부로 나무를 잘라내서는 안 될 것이다. 까탈스러운 생각인지 모르지만 우리 아파트를 보면 나무에 대한 우리의 의식수준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나무와 새를 가까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이 훨씬 여유롭고, 윤택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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