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賊難防가적난방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도둑은 막을 수 있으나 집안 식구들이 하는 도둑질은 막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집안 살림,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도 그렇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적의 침략으로 망하기 전에 內政내정의 문란으로 망하는 일이 더 많았다. 내정을 문란하게 만드는 정치인, 고위공무원, 법조인, 종교인들은 대표적인 가적들이다. 한때 5적가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지간한 도둑들은 숨어서 도둑질을 하지만 이들은 대놓고 큰소리 쳐가면서 나라의 살림을 절단 낸다. 근래에 국회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경제는 지옥이고, 나라는 위기라고 떠들면서 경제를 살리고 민생국회를 열자는 데 정작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을 볼 수 없다. 공천과 정당을 위해서라면 나라는 망해도 좋고, 노동자와 이재민은 생계가 끊겨도 좋다는 심보들이다. 법조인들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한다는 말을 좀처럼 들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라의 법을 농단하여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사법개혁을 하자는 국민적 공감이 이루어진 지 오래인데 정작 당사자들은 어깃장만을 놓고 있다. 공무원들이 책임감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는 자리마저 지켜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넙치 눈깔을 하고 납작 엎드려서 복지부동, 젖은 낙엽은 공무원들의 생존비결이 된 지 오래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나라의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인들이 혹세무민하고, 정치에 야합을 하는 것을 보면 5적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자신들의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는 나라와 국민은 죽어도 좋다면 사회의 적이 틀림없다. 교인들에게는 십일조를 강요하면서도 온 국민이 다 내는 세금은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이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감시하고 제지할 지혜와 용기를 가지지 못한 국민들은 어리석은 주인이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서라도 선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국민은 언제나 정치인 고위공무원에 속아 나라를 망치는 흉악한 가적들에게 곳간 열쇠를 통째로 내주고 있다. 그러니 도둑들이 주인을 우습게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유권자는 4년에 한 번씩만 속이면 또 넘어가는 무지렁이들이니까- 진시황이 점을 치니 북방 오랑캐 胡호를 조심하라고 했다. 그래서 胡를 막기 위해서 국력을 기울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정작 秦진을 멸망시킨 것은 오랑캐 胡가 아니라 자신의 무능한 아들 胡亥호해였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外敵외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內賊내적임을 몰랐던 것이다.
조선 멸망 후에 일어난 일련의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은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는 하지만 정작 내부의 적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위력이 크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 내부의 적은 친일파였는데 그들에 대한 역사적 청산은커녕 그들이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었다. 매국노한테 나라를 내맡겼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였다. 그 뒤로 매국노를 대신한 우리 家賊가적은 누구였는지, 그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역대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왔는지 심각하게 평가하고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미스터 선샤인 장면 조선이 일본에 망하기 전에 이미 內賊내적인 당쟁과 三政의 문란으로 망해 있었다. 일본군 일개 중대 병력에 都城도성이 무너진 왕조는 이미 국가가 아니었다. 낭인 검객 수십 명에게 황후가 궁 안에서 참살당하는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었다. 나라의 운명이 그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내정의 문란이 외적의 침입보다 그 폐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비단 옛날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말을 삼가서 그렇지 지금 우리의 主敵은 북한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민족도 아닌 북한이 주적이라면 家賊이 틀림없다. 지금처럼 가적이 외적보다 더 주인을 못살게 군다면 그야말로 집안 도둑이 더 무서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70년을 가적을 주적으로 삼고 살아왔다면 슬프고도 고마운 일이다. 역사를 돌아보건대 이렇게 비극적이고도 고마운 요행이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진정 우리나라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주변의 열강이 아니라 이 가적들이다. 외적들은 외상을 입히지만 내적들은 암적인 존재들이다. 외상은 치료약이 있지만 암은 드러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만 불쌍한 게 아니라 암이 있는 줄도 모르는 대한민국이 더 안타깝다. 이 모든 비극은 역사의식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한 정부의 노력으로도 극복이 가능하지만 무너진 역사의식은 한 세대의 각성으로도 모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