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국격(國格)

국가원수의 언어는 나라의 품격이다.

by 김성수

"화법에서 존비법은 우리말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

청자에 따라서 높임과 낮춤의 구별이 매우 엄격한 것이 존비법이다.



알기로는 우리말처럼 존비법이 발달한 예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예절의 본고장인 중국보다 더 엄격하다. 말뿐 아니라 임금에 대한 충성이나 장례절차나 근친결혼 금지 같은 것도 중국보다 우리가 더 까다로웠다. 그래서 동방예의지국이 아니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명분과 예의가 지나쳐 사육신 같은 충성미담은 국가의 이익보다 명분을 중요시한 우리의 특이한 역사였고, 조선시대에는 국력을 기울여가며 쓸 데 없이 장례절차를 따지다가 나라를 망쳤고, 혈연을 따져 먼 친척은 물론 근거 없는 동성 간에도 결혼을 막아 온 나라는 우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그만두고서라도 존비법은 언어예절을 지킨다는 장점도 있지만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리도 지키기 어려운 어법이니 외국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존비법을 잘못하여 불편이 많고, 때로는 언어예절을 그르쳐 불쾌감을 주기도 하는 일이 허다하다.


둘이서 私的사적으로 하는 대화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언중이 듣는 公的공적 대화에서는 존비법의 화법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공적 대화에서 말은 다수의 청자를 중심으로 해야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을 중심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공적 대화에서 청중에게 말의 대상에 대한 높임말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시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는 괜찮지만 나이와 상관없이‘남편께서 편찮으셔서- ’라고 해서는 다수의 청자에게 불쾌감을 주기 십상이다. 사적 대화에서도 청자에 따라서 존비법을 사용해야지 자신을 기준으로 하면 안 된다. 윗사람한테 자신의 윗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높임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할아버지한테 아버지에 대해서 ‘할아버님,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데-’라고 하면 언어예절에 어긋나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뜻이라도 높일 때와 낮출 때는 단어가 사뭇 달라진다. 아랫사람은 처먹고, 보통사람은 먹지만, 윗사람은 반드시 잡수셔야 한다. 우리말의 존비법은 이렇게 까다롭다.


일반 언중도 그러한데 하물며 국가기관에 있는 사람이 국민을 청자로 말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국민을 청자로 말할 때에 말하는 대상에 대해서 존댓말을 쓰면 안 된다. 아무리 대통령에 대한 말이라 해도 국민 앞에서 말할 때는 높임체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각하께서 말씀하셨다.’는 각하를 직접 보좌하는 사람들끼리나 할 말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국민들 앞에서는‘대통령이 말했다’가 바람직하다. 전제왕국에서는 몰라도 민주주의에서는 어떤 대통령도 국민들보다 더 높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잘한 각종 단체장들에 대해서 말할 때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시민들 앞에서 ‘시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라고 하는 일이 흔하다. 우리말의 존비법을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 그보다는 아부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렇다면 국가원수가 국민을 청자로 해서 말하는 존비법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국가원수는 개인으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국민을 청자로 해서 외국의 국가원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개인의 말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트럼프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를 -’‘트럼프 대통령님’이라고 말한다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낮추는 것이 된다. 자신은 개인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강대국 대통령이라 해도 우리 국민 전체를 낮출 권한은 없다. 더구나 트럼프 같은 사람에게 그러고 싶은 우리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높임말은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국민을 모독하는 짓이다. 우리 대통령이 일본의 천왕이나 중국의 시진핑에게 그런다면 어떨까?


물론 국가원수 간의 화법은 외교적 수사적인 면이 다분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화법과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강대국의 국가원수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환심을 살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의 패권국이고, 그 대통령은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도날드트럼프는 예측불허의 조폭두목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높임말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국제관계라는 것은 냉철한 경쟁과 철저한 이익 추구의 세계이다. 여기에서 겸손과 예절은 오히려 약자의 모습으로 간주되기 쉽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갖추는 지나친 예절과 순종적 태도는 오히려 푸대접과 무시로 되돌아오기 십상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점잖은 문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와 막말 말썽쟁이 김정은을 대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면 자명한 일이다. 말 잘 듣는 약소국은 귀염쟁이일 뿐이어서 제대로 대접받기 어렵다. 옛날 중국에 대한 조공외교나 삼전도의 굴욕을 생각하면 언어예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그때의 화법을 국가원수가 구사한다면 그때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통령이 하는 트럼프에 대한 높임말이 정당하다면 대통령 스스로가 화법으로써 지금의 상황이 조선시대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존비법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특이한 언어문화이다. 영어에는 이러한 화법이 없으므로 구태여 미국의 대통령에게 높임말을 갖추어 말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에게 챙기는 높임말은 생각보다 외교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의 말을 일일이 들을 리도 없고, 그렇다 해도 어차피 영어로 번역하면 그 수사적 높임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대통령이 지킨 지나친 언어예절은 우리 국민에게만 들리는 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 국민의 긍지와 자존심만 해칠 뿐이다. 그런데 중국어는 영어보다 존비법이 뚜렷하므로 이를 무시할 수도 없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강대국이므로 같은 화법을 구사한다면 과거 조선과 닮아가는 것이 아닐까? 필요하다면 부끄러운 조선을 닮은들 어떠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물며 하찮은 언어예절 하나 가지고 잔소리한다고, 외교적 수단에 불과한 사소한 일을 가지고 문제 삼는다고 핀잔할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국가원수는 외국에 대해서 당당하지 못하다는 서운함을 지울 수 없다. 그보다도 혹시 서툰 언어능력처럼 외교능력마저 그렇다면 서운할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걱정이 그저 약소 국민이 갖는 잔망스러운 콤플렉스일까?


그러나 북한의 지도자들이 중국 지도자들에 대해서 비굴한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당당히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일을 생각하면 심정이 착잡하다. 왜 우리의 국가원수는 북한 지도자들처럼 당당한 기개를 갖추고 있지 못할까? 북한의 지도자들은 허울 좋은 체면만 차리느라고 실익은 잃고 있을까? 그러나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줄타기하면서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수단을 보면 그저 허세만 부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그 강대국들에 대해서 당당하게 상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자존심 상하는 높임말을 실리외교의 수단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신라나 조선의 굴욕적 사대외교와 무엇이 다를까? 혹시 이런 말을 하다가 이적, 찬양고무죄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더라도 국가원수라면 자신의 말 한마디, 언어예절도 평범한 국민들과는 달리 후세 역사의 기록에 남는다는 무거운 역사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더구나 평소 국민에 대한 진실한 애정과 예의가 각별한 대통령이기에 그 아쉬움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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