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가 늙어간다.
우리 집 토이푸들 도토리가 이제 9살이니 이제 많이 잡아야 4-5년이 여생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칠순이 가까운 셈이니 천상 나와 다를 바 없는 신세이다. 그래도 이놈은 털이 얼굴을 덮고 있어서 나처럼 주름살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동안이나 다름없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짐작으로 나보다는 더 오래 살기 어려울 것이니 안쓰럽기도 하다.
얘 하는 짓을 보아도 이제 내리막길이 분명하다. 얼마 전부터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낮에도 잠자는 시간이 늘고, 잠잘 때가 아니더라도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어져 있을 때가 많다. 전에는 사람이 움직이면 꼬리를 흔들며 부지런히 쫓아다니더니 요즈음은 얼굴을 바닥에 댄 채 눈동자만 사람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나이를 먹다 보니 눈으로도 사람의 종적을 다 알 수 있다는 걸까? 잠을 잘 때는 코를 골아대는 것도 천상 노인네 짓이다. 전에는 장난감을 던지면 잽싸게 쫓아가서 물어오는 놀이를 즐기더니 요즈음은 몇 번 하고 나면 숨을 헐떡거리며 꾀를 부린다. 지금도 여전히 바깥 산보를 좋아하지만 조금 걸으면 이내 꾀를 부리며 걷기를 거부할 때가 많다. 전에는 혼자 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으나 근래에는 혼자 남겨 두어도 그냥 멀뚱거릴 때가 적지 않다. 전에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길길이 날뛰면서 반겼지만 지금은 잠자리에서 느긋하게 앉아 쳐다본다. 이제 혼자서도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은 듯하니 이것이 노련미인가 보다. 원래 다리 힘이 약하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주인 잠자리인 침대에 뛰어오르지 못했다. 보기 딱하여 침대 다리를 낮추어 주었지만 요즘은 낮아진 침대에도 쉽게 뛰어오르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품이 참 딱하기도 하다.
생리도 일 년에 두어 차례는 하더니만 지금은 일 년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다. 지금까지 숫처녀를 면치 못하게 했으니 번식의 본능마저 억누른 미안함이 적지 않다. 이놈 하나도 버거운데 새끼를 낳으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사실 얘와 같이 사는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아내의 뜻을 어길 수가 없어서였다. 나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파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귀엽게 생겨서 새끼를 내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이런 형편에 새끼들이 생긴다면 재앙이다. 중성화 수술을 해 줄까도 생각했지만 그 또한 잔인한 처사 같아서 귀찮지만 그냥 생리를 하게 두기로 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임신과 출산과 양육의 고통을 면해 주었으니 좋은 주인 노릇을 한 셈이 아닐까?
얘는 토이푸들이라 머리가 좋지 않다. 장난감처럼 귀엽게 생긴 것 말고는 보탬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저를 지켜주는 것은 안주인이지만 나를 더 따르는 것 같으니 물색을 모르는 놈이다. 그래도 덩치가 작으니 사료도 덜 먹고, 배변패드도 덜 쓰지만 털이 빨리 자라서 석 달에 한 번은 개 미용실에 가야 하니 내 이발비보다 세 배는 더 비싸다. 그러나 얘 평생 병원에 간 일은 두어 차례에 불과하니 이발비를 아까워하면 주인의 도리가 아닐 것 같다. 그래도 신통한 것은 털이 빠지지 않으니 침대에서 같이 자도 문제가 없고, 방이 지저분하지 않다. 성질도 온순해서 먹을 때만 건드리지 않으면 온순하기 그지없다. 몸집도 작고, 짖는 일도 거의 없어 층간소음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바깥에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주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얘만 상대하니 개 주인은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이제 도토리 하고 같이 살 수 있는 세월이 많지 않다. 이놈이 나를 저 세상에 보낼 요량이 없으니 별 수 없이 내가 이 녀석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반려견을 기르다 보면 헤어질 때가 슬퍼서 견디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 전처럼 파양이니, 애물단지이니 하는 지청구는 하지 않을 테니 남은 여생이나마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