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이야기

by 김성수


뻐꾸기라는 놈은 아주 교활해서 집 지을 생각은 아예 않고, 저보다 힘이 약한 새가 지어놓은 둥지를 찾아서 알을 낳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일단 알을 낳으면 그 뒤로는 일체 어미로서 하는 일이 없이 그냥 딴짓만 하다가 새끼가 다 크면 그때야 와서 데리고 간다고 한다. 어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새끼도 흉악해서 알에서 부화하고 나면 본능적으로 먼저 있던 주인 알을 밀어내고 제가 둥지를 독차지한다. 눈도 좋지 않은 오목눈이는 저보다 훨씬 큰 뻐꾸기 새끼에게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준다. 이런 장면을 TV에서 보기 전에는 뻐꾸기란 놈이 그렇게 나쁜 놈인 줄 몰랐었다. 그것도 모르고 뻐꾹새, 소쩍새, 두견새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몰라 다툼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옛날 사람들은 이미 뻐꾸기의 악행을 알고 있었다. 일찍이 <詩經>에는 維鵲有巢 維鳩居之 (유작유소 유구거지)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는 ‘까치집에 뻐꾸기가 산다.’라는 뜻으로 까치는 신부, 뻐꾸기는 신랑이라고 풀이해서 군자의 화합을 이루는 노래라고 합리화했다. 실은 維鳩居之(유구거지)는 鳩居鵲巢(구거작소)라는 의미로 ‘까치집에 뻐꾸기가 산다’는 정도로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뻐꾸기의 흉악한 습성을 고대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成語에서는 아예 鳩奪鵲巢(구탈작소), ‘뻐꾸기가 까치집을 빼앗아 차지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강자가 약자를 빼앗고 핍박한다’라는 풍자적 의미로 보어진다. 흔히 鳩를 글자를 좇아서 '비둘기'라고 하지만 비둘기처럼 온순하고 작은 덩치로 훨씬 크고 포악한 까치집을 빼앗을 수는 없으므로 사실에 어긋난다. 그래서 鳩는 비둘기가 아니라 뻐꾸기(尸鳩)라고 했다. 중국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고문헌에서도 鳩를 布穀鳥(포곡조-포곡은 뻐꾹의 의성어임), 즉 뻐꾸기라고 풀이했다. 그러니 鳩를 비둘기로만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결국 <詩經>의 維鳩居之는 현대에 와서야 다큐를 통하여 鳩奪鵲巢(구탈작소)라는 풍자, 고발적 의미로 입증된 셈이다.


지금 상식이 되어버린 뻐꾸기의 악행이나 중국의 고사성어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전문학 연구에 관하여 생각을 다시 해 보자는 말이다. 우리 문헌에는 유구곡(維鳩曲), 혹은 포곡조(布穀鳥)라는 고려가요 곡명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시용향악보>에는 ‘비두로기’라는 고려속요 가사의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그 가사 내용은 ‘비둘기는 울음을 울지만 뻐꾸기는 난 좋아 난 좋아’라는 아주 짤막하고 동요처럼 소박한 내용이다. 노래의 일부만 기록되었으므로 전체적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그 노래가 곧 유구곡, 포곡조였는지도 확실치 않으나 그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작자는 고려의 왕 예종(睿宗)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는데 대체로 이에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俗謠(속요)란 원래 ‘백성들이 부른 민요’를 말하는데 왕이 지은 창작가요라면 속요일 수 없으므로 이는 적절치 않은 주장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예종이 신하들에게 직언을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는데 그 가사로 보아서 전혀 이에 부합되지 않는다. 어디를 보아도 제왕의 근엄하고 진중한 의도를 읽을 수 없으니 이도 억지스러운 합리화일 것이다.


維鳩는 비둘기가 아니라 포곡조, 뻐꾸기이다. 그것은 유가들이 주장하는 ‘군자의 결혼행진가’도 아니요, 단순한 사랑의 세레나라면 역시 재미 없다. 그것은 포악한 위정자, 관리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탄식을 비유적으로 드러낸 사회고발 문학으로 보고 싶다. <詩經>은 몰라도 우리의 <시용향악보>의 ‘비둘기노래’는 우리 백성들의 풍자고발시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힘없는 백성은 울음을 울지만 포악한 관리들은 난 좋아, 난좋아’라고 풀이한다면 이야말로 백성들의 소망과 애환을 담은 민요, 속요가 아니겠는가?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이 지루했다면 이 이야기는 더 지루하겠지만 이래야 우리의 국문학 작품의 가치가 더욱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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