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 이야기 4

犬公과 狗肉

by 김성수

개가 많다보니 개에 대한 논란도 많다. 그 와중에서 전에는 없었던 반려견이란 단어가 정착되고, 동물학대법이 제정되더니 최근에는 개 식용금지법이 제정될 기세이다. 윤회설이 아니더라도 동물들도 같은 생명체라면 존중해 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부부한테 쓰던 '반려자'에 개도 끼어드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반려자가 되고보니 어지간한 사람보다 개가 더 존중받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개팔자 상팔자’라는 말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못마땅하면 으레 앞에다 '개'자를 즐겨 붙였고, ‘개 패듯 한다’는 험악한 말도 있었고, 예부터 개장국은 우리의 주요한 영양공급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람팔자 시간문제’라더니 ‘개팔자도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모든 개도 같지 않다. 그런데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개 식용금지법, 동물학대법을 선진문화인 것처럼 운용하는 것은 좀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개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 온 것이지만 개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도 중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이다.


개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漢字에 잘 나타나 있다. 犬은 개의 모습을 단순화한 상형자이다. 엎드릴 伏자는 사람(人)에게 절대복종하는 개(犬)의 모습이니 사람과 개와는 본래 철저한 주종(主從)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개처럼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개고기를 즐겨 먹었으니 참 잔인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개’로 통칭하지만 옛날에는 같은 개라도 犬과 狗를 구별해 왔다. 인간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 왔던 犬과는 달리 狗는 사납게 짖어대고, 상처를 내고, 심지어는 목숨마저 위협하는 위험한 놈이었다. 그래서 개를 존중하고 싶을 때는 犬이라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狗라 해서 구분해 왔다. 狗자의 句는 개가 짖는 소리- 句의 중국어 발음은 gou, 즉 句는 개 짖는 의성어임. -를 나타내는 글자로서 뜻과는 상관이 없는 글자이다. 犬은 상형자이지만 狗는 뜻과 소리를 같이 나타내는 形聲(형성)자이다. 狗는 사람이나 가축에게 대들고, 물어대는 들개나 늑대에 가깝다. 犬은 인간친화적이기 때문에 犬公이라는 칭호를 주지만 狗는 사람에게도 적대적인 행동을 자주 하기 때문에 그런 품격의 이름을 주지 않았다. 개고기를 말할 때는 犬을 쓰지않고 반드시 狗를 써서 狗肉, 보신탕은 狗肉湯, 개고기를 폄하할 때는 羊頭狗肉(양두구육- 양 머리를 내놓고 개고기를 판다.) 이라고 해서 犬과 대우를 달리 했다. 반려견한테는 名犬, 忠犬이라고 존중해 주었지만 사나운 狗에게는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 얕은 수작이나 속임수를 서절구투(鼠竊狗偸), 하룻강아지는 일일지구(一日之狗)라고 해서 犬과 달리 부정적인 의미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우리는 犬이건 狗이건 모두 ‘개’라고 불렀으니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은 언어였다. 그것들을 구분했더라면 애완견, 충견을 잡아먹는 일도 적었을 것이며, 서양인들의 비위에 따라 반려견을 사람보다 극진히 모시거나 사나운 개마저 과잉보호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작 犬과 狗의 구분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일괄적으로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善惡(선악)을 가리지 못하는 처사가 아닐까?


사람에게 절대복종하는 반려견을 잡아먹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지만 사람을 물어대는 맹구(猛狗)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들개까지 못 먹게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반려견이라 해도 사람보다 양육비, 치료비가 더 비싸다든지, 개 사체를 사후에 사사로이 매장을 금지하거나 개 장례식장까지 성업하는 세태는 지나치다 싶다. 우리한테 개는 식량, 영양식이자 보신약이었다. 반려견과 식용의 구분이 애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법으로 식용을 금한다면 법의 남용이 아닐 수 없다.


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이제는 법이 아니더라도 반려견을 잡아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을 내세워 비위생적으로 처리되는 개고기를 즐기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서양인들이 잔소리를 해댄다고 해서 모든 개를 반려견으로 모시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싶다. 그보다는 역시 우리의 판단과 가치관에 맡겨 두어야 하지 않을까? 법은 약과 같아서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약 좋다고 남용하면 오히려 약이 없는 것만 못하듯이 법도 그렇다. 법 만능주의 사회는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뻐꾸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