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생각하며
아파트 분리쓰레기장을 지나다 보면 쓰레기를 체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노력을 실감할 수 있다. 쓰레기 더미마다 여러 가지 표지판이 붙어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눈에 거슬리는 것들도 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이 한자어들이라 신세대들이나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녹록한 말들이 아닐 것 같아 걱정이다. 이왕 쓰는 생활어라면 이치에 맞고, 모든 사람에게 쉽게 소통력이 좋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쓰레기투기금지’라고 커다랗게 쓰여있다. 대개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말라는 뜻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내문은, 특히 어린애들한테는 정확하고 소통력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투기’라는 말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얼핏 부동산 ‘투기’를 연상할지 모른다. 부동산은 投機이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投棄라고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한자 불통 시대에 알기 쉽게 ‘버리지 마시오’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어려운 한자말로 ‘투기금지’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 밑에는 한 술 더 떠서 ‘적발시 고발조치’라고 써있다. 경고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은 좋은데 그런 어려운 한자어보다는 ‘어기면 고발함’ 정도로 충분할 것 같다.
'종량제봉투'란 말도 그리 쉬운 말이 아니다. 글자대로 하면 ‘분량에 따라 규격이 정해진 봉투’라는 뜻이겠는데 그 어의가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의문이다. 그 말이 번거로우니 한자로 줄여서 ‘從量制봉투’라 한 것은 좋았지만 한자이건 한글이건 쉬운 말이 아니다. 봉투란 말도 원래는 한자어지만 고유어처럼 쓰이고 있으니 소통에 문제가 없지만 ‘종량제’란 말은 그렇지 않다. 制란 말도 필요 없는 군더더기가 붙은 것이니 이왕이면 ‘종량봉투’가 더 간결해서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소통되는 의미는 돈을 들여야 하는 쓰레기봉투이니 알기 쉽게 말하면 ‘유료봉투’이다. 쓰레기를 유료화하여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봉투 크기를 구분하기 위해서 분량을 표시하였기 때문에 ‘종량제봉투’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한자어의 내력을 모른다면 소통력이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어는 이왕이면 한자어보다는 고유어가 더 좋은 건 말할 필요 없다. 억지일지 모르지만 얼핏생각에 ‘알뜰봉투’가 어떨까 싶다. 봉투라면 두둑해야 좋지만 쓰레기만큼은 알뜰하게 얇을수록 좋을 것이다.
괜히 까탈부린다고 하겠지만 ‘분리쓰레기’란 말도 듣기 편한 말이 아니다. 분리란 원래 붙어있거나 섞여있던 것을 떼어놓거나 나누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분리쓰레기란 재활용이 되는 것과 아닌 것을 나누어서 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분리’라는 말보다는 ‘분류’라는 더 적절한 말이다. 그리고 이왕 고치기로 말하면 아예 고유어로 바꾸어 ‘가린 쓰레기’가 어떨까 한다. '분리배출'이란 말도 '가려버리기'가 더 좋을 것이다. 말을 새로 만들다 보면 어색하고 이상한 말이 되기 쉽지만 어떤 말도 처음에는 대개 그렇기 마련이다. 자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통될 수 있을 것이고, 더 좋은 말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언어를 갈고 닦는일은 오랜 시간 동안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다.
‘재활용쓰레기’도 ‘재’자가 없이 ‘활용쓰레기’로 충분할 듯싶다. 아니면 ‘용’자를 빼서 ‘재활쓰레기’도 무방할 것이다. 고유어가 좋다 해서 ‘다시 쓰는 쓰레기’라면 번거로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얼핏 생각에 ‘되씀쓰레기’는 어떨까 싶다.
캔류, 병류, 종이류, 의류- ‘류’자를 꼭 붙여야 할까 싶다. 그것들이 없어도 훌륭히 뜻을 전달할 수 있다. 필요 없는 글자는 가급적 줄이는 것이 언어소통에 좋다.
우리 주변에는 다듬어야 할 생활용어들이 널려있다. 쓰레기장만 하더라도 이런 말들이 쓰레기처럼 쌓여있으니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오죽할까? 곳곳에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표지판이 수두룩하다. 멀쩡하게 소통이 되는 말들을 가지고 일삼아 궁시렁댄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중에는 정확하게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들이 너무 많다. 이런 말들은 국어순화 차원에서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잔소리라도 해야 그나마 밥값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분수를 모르는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