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9

by 김성수


내가 살고 있는 서귀포 동홍동 5차아파트는 동향집이다. 남향집이 좋다는 걸 알지만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향집에 살려면 조상의 덕이 있어야 한다니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남향의 배산임수(背山臨水)는 풍수의 기본인데 뒤로는 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남풍이 불어오는 물이 눈 아래 보이는 곳이다. 어렸을 때 우리 집 뒤 북으로는 낮으막한 산이 있었고, 남쪽 앞으로는 넓은 들판 개울을 건너 한참 멀리에는 산이 둘려쳐 있었다. 여름에 비가 올라치면 멀리 남산 위에서부터 어두워지고, 곧 이어 부옇게 빗발이 들판을 건너 쳐들어왔다. 그러면 서둘러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을 치우고, 빨래를 미리 걷어들이기에 바빴다. 집이라면 으레 그런 줄 알았는데 아파트 동향집에 자리잡고 보니 어쩐지 낯설고, 불안하다. 여명을 일찍 맞을 수는 있지만 낮이 되면 일찌감치 햇살이 사라지고, 해가 꾸물대는 여름 저녁에는 햇볕이 따가워 눈도 뜨기 어려웠다. 겨울에는 난방비도 더 들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는 재미가 적지 않다. 아침에 커튼을 걷으면 아파트 건물 사이로 동이 터오르는 하늘은 하루에 의욕을 준다. 저녁을 먹으려 식탁에 앉으면 이번에는 눈앞에 펼쳐지는 저녁노을이 아주 환상적이다. 저녁노을이야 어디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집에서는 아주 특별하다. 창밖 서쪽으로 약 50미터에는 복자수도원 ‘면형의 집’이 있고, 그 정원에는 커다란 녹나무가 있어 하늘의 절반을 덮고 있다. 왜 이름이 녹나무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육지의 느티나무를 닮아서 서귀포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다. 녹나무는 제주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오래되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밑둥 둘레가 4미터도 넘고, 높이는 17미터 정도, 옆으로는 그보다 두 배는 넓게 퍼져있다. 수령은 250년 정도라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큰 나무는 본 적이 없다.


이 나무는 100년 전에 150년 된 큰 나무를 옮겨심었다고 한다. 나무 잘라내기를 잡초베듯하는 우리로서는 장비도 없었던 옛날에 이렇게 힘든 일을 벌인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엄청난 공사를 실행한 사람은 서양에서 온 다케 신부님이라고 한다. 원래 자리에 그대로 나무를 놓아두었다면 벌써 고목으로 쓰러졌을 것이니 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 그 혜안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식물학자로서 제주도 왕벗나무를 찾아서 일본학자에 알리고, 그 대신 온주밀감 나무를 받아 여기에 심어 온주감귤의 시원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면형의 집에는 그때 감귤나무의 子木이 남아있다. 면형의 집의 정원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정원수가 어우러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녹나무가 단연 으뜸이다.


정원수와 녹나무 뒤로 빨간 저녁놀이 불타고 있는 모습은 매혹적인 그림이다. 이 환상은 물론 황혼이 연출한 것이지만 녹나무가 없다면 이토록 황홀할 수 없을 것이다. 땅거미로 시커머진 녹나무 뒤로 빨갛게 달궈진 하늘이 퍼져있는 모습이야말로 절경이 아닐 수 없다. 황혼이 홀로 위대하다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바닷가가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황혼만 가득 찬 하늘과 바다는 그냥 무섭기만 할 것 같다. 가을 산이 빨간 단풍나무만 그득하다면 금방 지루해진다. 단풍숲에는 푸른 소나무가 끼어있어야 하듯이 저녁놀에는 녹나무가 있어야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람들은 완벽, 순수, 통일을 좋아하지만 사실은 '조화가 가장 자연적'이요, '균형이 가장 인간적'이다.


이런 호사는 동향집이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다. 살다보니 아파트도 오래 되었고,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불편하다. 그래서 다른 집을 기웃거려 보지만 아침의 생기와 저녁놀의 환상을 다른 데서는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면형의 집이 가까워 언제든지 찾아가 기도를 드리고, 힐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도 내가 이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새로 지은 남향집이라도 아직은 이 기쁨과는 바꾸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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