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장마
제주도에는 고사리가 많다고 한다. 고사리는 습기를 좋아하는데 완만한 구릉이 많은 섬 제주도는 고사리 생육조건을 잘 갖춘 셈이다. 4-5월에 비가 자주 오는데 이것을 ‘고사리장마’라고 한다. 이때가 되면 산간 도로가에는 차들이 많이 서 있는데 대개는 고사리 꺾으러 온 사람들이다. 심지어는 육지에서 고사리 꺾으러 일삼아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고사리가 하도 많아 숫제 낫으로 벤다면서 고사리를 많이 말려놓으라고 하는 친구도 있다. 육지에도 고사리 재배를 하는 곳에서는 낫으로 벤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에는 고사리를 따로 재배하는 곳은 없다고 하니 제주도 고사리는 모두 자연산인 셈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고사리가 많은 곳을 본 적이 없다. 고사리가 많은 것은 틀림없지만 아무 데나 널려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도 고사리 많은 곳은 사촌도 안 일러준다고 한다. 그러니 나 같은 뜨내기는 고사리 꺾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기껏 해봐야 두어 번 먹을 것밖에 소득이 없으니 말리고 자실 것도 없다. 시장에 가보아도 고사리 값이 육지보다 싸지 않다. 물론 부지런히 헤집고 다니다 보면 고사리밭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럴 처지가 못되니 고사리 철이라 해도 마실삼아 두어 번 산에 오를 뿐이다.
고사리를 꺾으러 갈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봄나물도 찾아보기 마련이지만 육지에 비해서 봄나물이 적은 편이다. 더 서운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쑥이 그리 흔치 않아서이다. 육지에서는 지천이 쑥인데 여기에서는 지대가 낮은 집 근처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중산간에 한참 올라야 구경할 수 있다. 그것도 일부러 찾아다녀야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어린 쑥을 넣고 끓이는 쑥국의 향이 신통치 않다. 크게 자란 쑥을 삶아서 쑥떡을 해먹을 만큼 흔치도 않다.
쑥이 셀 때쯤이면 이어 나오는 것이 머위이다. 머위가 어릴 때는 무쳐먹고, 좀 크면 쌈 싸먹고, 다 자라면 대궁을 잘라서 삶아 들깨가루를 넣고 국을 끓이면 옛 시인들이 ‘나물 먹고, 물 마시고, 누워서 배 두드리는’ 맛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에는 이런 머위를 찾기 어렵다. 머위는 원래 집 근처에 자라는 나물이지만 여기에서는 머위 대신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털머위이다. 털머위는 머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먹을 수 없다. 다만 가을이면 노란 꽃을 볼 수 있는 게 위안일 뿐이다. 보는 재미보다 먹는 즐거움이 더 좋다면 천박한 식탐일지 모른다.
봄나물 하면 씀바귀를 빼놓을 수 없다. 씀바귀를 캐서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서 무쳐먹으면 쌉쌀한 맛이 나른한 봄철 입맛을 돋운다. 특히 그 뿌리 맛이 일품인데 뿌리까지 맛난 나물은 불행하다. 뿌리까지 깡그리 캐내어 씨가 마르기 때문이다. 옛날에 공주 무성산 한쪽에는 아주 맛있는 쇠똥나물이 있었다. 거기 쇠똥나물은 특이하게 뿌리가 빨갛고 동그랗게 생겼는데 아주 특별한 맛이었다. 그런데 뿌리까지 캐내니 몇 년 못 가서 아예 씨가 말라버렸다. 특산물의 씨를 말려버렸으니 지금도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일이다. 냉이도 같은 운명이어서 아무리 냉이가 많은 곳도 뿌리까지 도려내니 몇 년 못 가 씨가 마른다. 그나마 제주도에는 냉이를 보기가 힘들다. 봄나물을 캐더라도 뿌리는 남겨두는 인정이 있어야 한다. 씀바귀 맛이 그리워 시장에 가도 찾을 수 없으니 제주에는 씀바귀가 귀한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봄나물 중에는 두릅도 있다. 나무두릅이 보기에는 좋지만 땅두릅의 향을 따라가지 못한다. 야생에서는 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값도 비싸거니와 그 향이 육지만 같지 못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제주도의 봄나물들은 대체로 그 맛이 육지만 못하다고 한다.
제주도는 섬이라서 수산물이 풍부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찮은 봄나물을 대신할 수 있다. 봄나물이야 간식거리이고, 해산물은 주식이니 축복받은 제주도이다. 봄나물은 아니지만 제주의 당근과 월동무는 육지것이 따르지 못하는 맛이다. 맛도 맛이지만 저장성이 좋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 좋다. 그것만으로도 봄나물에 대한 서운함을 퉁칠 수 있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