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우리말

우리말을 사랑합시다.

by 김성수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법주차위반’이란 희한한 딱지가 차에 붙어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금방 알겠는데 ‘불법’과 ‘위반’이 같은 부정어이다 보니 ‘불법’이 졸지에 ‘합법’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이 정도라면 아파트 주차장이니 주민만 눈 감으면 그만이다.


자주 듣는 말 중에 ‘이동주차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도 있다. ‘차를 옮겨주세요’하면 알기 쉬운 말을 이렇게 말해서 유식함을 뽐내고 싶은 심사일까? 아파트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면 안내신호가 온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 차가 입차되었습니다.’라고 한다. ‘지금 차가 들어왔습니다‘라고 하면 알기 쉬운 말을 왜 그렇게 이상하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이가 많거나 학교에서 국어공부를 제대로 못한 탓일 것이다.


한 대학교 출입구 경비실에 ‘단순통과차량통행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당연히 안내문구는 짧고 쉬울수록 좋다. 그런데 이 문구는 그렇게 긴 내용이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아리송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궁리를 해야 했다. 우선 ‘단순통과차량’이 이상하다. 그러면 그 반대어인 복잡통과차량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면 더 복잡해진다. 여기의 특수사정을 모른다면 도무지 알기 어려운 말이다. 예리한 분석을 통해서 여기는 교내지역이니 학교에 볼 일이 없이 지나가는 차량은 ‘단순통과차량’이라는 사실을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한번 보고 알 수 있어야 하는 도로 안내문을 이렇게 한참 궁리를 해야 알 수 있다면 안내가 아니라 숫제 수수께끼이다. 안내를 하려면 ‘불필요한 차량’이나 ‘통과차량’이고, 더 쉽게 말하면 그냥 ‘지나가는 차’라고 하면 된다. 그렇더라도 ‘그냥 지나가는 차량 통행금지’라고 해도 역시 어색하다. 그렇다고 ‘외부차량통행금지’와는 다르다. ‘지나가는 차 안됨’하면 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원래 생각과 같지 않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안내문구는 원래 쓸모없는 말이다. 이 학교에 볼 일 없이 지나가는 차가 그 대상이겠는데 그런 사람에게 이 안내문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안내문을 보고 오던 길을 포기하고 순순히 돌아갈 것인가?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석지역'이라는 표지판도 그렇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이 쓸모없는 보여주기, 멋대로 식의 일들이 너무 많다. 이 대학처럼 배웠다는 사람들이 더 한다.


'친구'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지만 한자어라는 점에서 개운찮은 말이다. 親舊라는 말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 온 사람을 말한다. 단어 의미구조로 보아서 상당히 추상적이고 형용사적이어서 명사로서는 어색한 단어이다. 생각건대 옛 문헌에 親故(친고)가 먼저였다. 친고는 혈연관계나 사이가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것이 음이 유사한 '친구'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니 舊는 억지한자어인 셈이다. 혈연관계가 아닌 지금의 Friend란 의미로는 '동무'가 있었다. 그런데 공산당에서 동무란 말을 차지하고 나니 우리는 이를 기피하여 '동무' 대신에 '친구'란 말을 정착시켰을 법하다. 그러나 의미를 생각하면 친구보다는 '동무'가 더 정감이 가는 말이다. '人民'이 더 좋은 말이지만 역시 공산당에게 선점당하여 우리는 여전히 일제의 냄새가 나는 '國民'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같다. 그러나 同務도 사실은 한자어로서 더구나 공산당 색채가 강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좋은 의미이지만 '친구'도 '동무'도 애용하고 싶지 않은 단어이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벗'이란 아름다운 고유어가 있었다. 지금도 쓰고 있는 좋은 말이지만 친구에 밀려 나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무, 친구보다는 벗이 가장 좋을 듯하다. 짧고, 고유어이고, 발음하기 쉬운 말을 놓아두고 왜 어색하고 긴 '친구'란 말이 성행하고 있는지 불만이다. '암벗' '숫벗'이 어색하다면 '여벗' ' '남벗'도 괜찮을 것 같다. '술벗' '놀이벗' '소꿉벗' '길벗'-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한 우리 말이다. 우선 '이상한 우리말'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싶어서 하는 꼰대의 잔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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