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게 은퇴생활을 하다 보니 좋은 점이 많지만 그중 가장 여유가 있는 자산은 역시 시간이다. 시간의 굴레에서 끌려다니다가 거기에서 풀려나니 모든 시간이 다 내 것이 되었다. 물론 정년 후에도 시간에 쫓겨가며 현역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능력인사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처지로서는 그보다는 널널한 시간부자가 더 좋다. 빈곤노인이 수두룩한 형편에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여생까지 그렇게 쫓겨가며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더러는 한가하다 못해 심심할 때도 있어 스스로 초라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가끔은 재능기부라도 하고 싶지만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억지로 찾아다니면서 잘난 척, 아는 체하기도 쑥스럽다. 심심하다 보면 지루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 보면 삶에 활력도 잃고, 재미도 없어진다. 은퇴 후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활력과 쾌락의 노년을 좋아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신의 처지를 잊고 심신을 혹사하게 될까 염려스럽다. 바야흐로 초고령사회에서 장수를 노인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면 염치없는 늙은이다. 無病(무병)까지는 정당한 소망이지만 長壽(장수)는 자신을 빼놓고 나면 사회의 미덕이 아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장수는 반드시 나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장수와 행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제 발로 걷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면 장수는 오히려 욕이다. 나이가 많아도 이룬 일이 없다면 나잇값을 못한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죽는다면 이룬 일은 많았더라도 ‘내가 산’것이 아니다. 정말로 정신이 없어진다면 치매이다. 장수하지 못했더라도 삶의 의미를 얻었다면 오래 산 것과 같다. 의사, 열사, 지사들은 단명했더라도 욕된 삶을 산 장수자보다 더 오래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나로서는 그런 지사들을 따를 수 없으니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내가 바라는 바가 있다면 주어진 여생을 ‘여유있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으니 이제는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 남은 삶의 과제이다. 그러니 분에 넘치는 의지, 욕망보다는 분수에 맞게 살고 싶다. 건강비결이나 즐거운 인생이나 장수비결 같은 것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건강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경쟁, 건강, 과욕, 쾌락, 혹사보다는 안분지족과 여유있는 여생, 거기에다 가능하다면 남에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때로는 심심하게 빈둥대며, 아무것도 안 해도 좋고, 약간의 재미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옛날에는 무언가 이루려고 맹렬하게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그때는 소중한 시간을 내서 소설 읽는 것도 아까웠고, 시시껄렁하게 드라마를 보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아까운 일은 별로 없고, 시간을 낭비해도 좋다는 배짱이 생겼다. 그래서 미처 읽지 못했던 소설책도 쌓아놓고 읽고, 드라마도 거리낌 없이 보고 있다. TV에는 시도 때도 없이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영화도 있고, 유익한 유튜브도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옛날에는 계획된 일이 있어 거기에 맞추어 살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무엇을 해도 부담이 없다. 몸이 여의치 않다보니 책보다는 TV가 더 편리하다. 드라마 영화도 좋지만 교양다큐가 더 관심이 간다. 저렇게 좋은 정보나 교양물이 즐비한데 그것도 모르고 무지하게 살아온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아는 체하기를 좋아했으니 – 늦게나마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퍽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에는 시간 나는 대로 유튜브의 교양다큐나 역사리포트를 자주 본다. 시간의 제약이 없으니 눈이 피로하고, 지겨울 때까지 늘어지게 볼 수 있어 좋다. 대체로 IT에 어두운 나는 유튜브라면 우선 가짜뉴스 공장이거니 했다. 게다가 유투버라면 거의 사기꾼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매우 건전하고, 믿을 만하고, 유익한 정보도 많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책을 드려다 보기가 점점 힘들어가는 형편에 다큐나 영상으로 제작된 교양물들은 아주 쓸모가 있었다.
이런 재미를 누려본 지가 얼마 안 됐으니 정서, 정감,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옛날의 지적이 지금에야 실감이 난다. 각박한 정서상태로 해서 그동안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잘못도 많이 저질렀을 것이다. 노경에는 ‘지금의 모든 일’이 가장 좋을 때라고 한다. 그러니 더 이상의 재미나 행복보다는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일이 없다. 다만 죽기 전에 내가 저지른 과오를 용서받을 수 있으면 좋겠고, 나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얼마간 남은 삶을 마칠 때가 되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지 깨닫는 것을 여생의 목표로 삼고자 한다면 분수를 모르는 욕심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