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을 잃어버리다.

by 김성수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은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 이것을 몸에 지니지 않으면 군인이 무기를 들지 않은 것처럼 매사가 불안하다. 이놈은 사람을 '사회적 동물'에서 ‘휴대폰 동물’로 바꾸어 놓았다. 단시일 내에 인간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든 물건이 또 있을까 싶다. 인간의 間자는 문 사이 틈에서 햇빛이 새어나오는 모습을 그린 글자이다. 그런데 지금의 間자는 문 사이에 폴더블스마트폰이 걸려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놈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철저히 갈라놓았다. 가족, 이웃, 옆사람보다는 스마트폰이 훨씬 중요해졌다. 이제 이것이 없으면 사람노릇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원래 나는 첨단문명의 이기인 컴퓨터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도 컴맹, 폰맹에 가깝다. 어린애들도 들고 다니는 IT기기들을 늙어가는 내가 꼭 따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고집도 한몫하였을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손전화를 사용한 지는 이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당시에 이것이 없으면 별종, 괴물, 원시인 등 별별 험담을 다 들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모진 소리를 들어가며 버텨내다가 ‘저 편하고자 남 불편하게 하는 놈'이란 악담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하였으나 일단 한번 빠져들어가니 나도 역시 별종이 못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폰을 졸지에 잃어버리고 나니 하늘이 노래졌다. 갑자기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휴거하듯이 사라져 버렸다. 아내 전화 빼고는 누구의 번호도 머리에서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당황'과 '황당'은 똑같은 글자이지만 순서를 바꾸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내가 얼마나 이것에 빠져있었는지 절감할 수 있었다.


습관, 버릇을 제2의 천성이라고 하지만 휴대폰의 노예가 된 것을 제2의 천성이라고 하지는 않으니 폰에 ’인이 박였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말일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인이 박이다’는 우리 고유어라고 한다. 그러나 ‘인’의 어원을 고유어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도장 印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더 어색한 풀이이다. 또는 화학원소 '인'(燐)으로 장황하게 풀이한 것도 있지만 노력에 비해 믿음이 덜 간다. 그렇게 어려운 풀이보다는 ‘상처가 곪으면 고름의 뿌리에는 노란 색의 응어리가 맺히는데 그것을 ‘인’이라고 한다. 인의 사전적 의미는 ‘고치기 어려운 병의 근원, 뿌리’이다. 그런데 병의 근원을 한자로 癮(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은 한자인 ‘은’을 발음하기 쉽게 전설모음화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 아닌가 한다. ‘인’이 되다보니 한자라는 의식이 없어져 고유어로 인식하게 되지않았나 생각한다. 우리가 고유어로 생각하는 말 중에는 이렇게 한자음이 살짝 변하여 한자어라는 의식을 못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기에 인이 박여있다. 그래서 문명의 이기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각종 문명의 이기는 지구를 옥죄는 탄소를 배출하지만 편리성에 인이 박여 여전히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휴대폰이 없으면 현대인들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나도 그 예외가 아니다. 나는 폰맹이면서도 휴대폰의 편리성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그것에 의존해서 살았다. 전에는 주소록, 방명록, 전화번호, 메모수첩- 이런 것들을 따로 마련해 두었으나 스마트폰을 쓰고나서부터는 거기에 모조리 집어넣고서는 그런 것들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갑 대신에 휴대폰 피에 붙어있는 지갑에 신용카드, 신분증까지 몰아넣고 다녔다. 그러다가 전화를 통째로 잃어버렸으니 그 결과는 가히 참혹한 것이었다. 신분증, 신용카드, 전화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나니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지인들하고 소통하고 있었던 모든 소통수단이 거덜나고 말았다. 그중에서도 주소록, 카톡망을 잃어버리고 나니 삶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발로 뛰는 사회활동보다는 폰에 의지해왔던 나로서는 졸지에 무인도의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휴대폰의 인은 생각보다 훨씬 지독한 것이었다.


이제 문명의 이기에 빠져 인이 박이는 일을 줄여야 하겠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인이 박인 상태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새로 폰을 샀더니 그 사이에 사용방식이 다 달라져 답답하기 짝이 없다. 아예 폰에 목사리를 해서 매달고 다니라는 충고도 있지만 이제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나이가 되었으니 계제에 스마트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를 궁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소망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지인들이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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