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의대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by 김성수


천진난만한 꿈을 꾸며 마음대로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교 어린애들을 모아 ‘의대반’을 만드는 사설학원이 있다고 한다. 역시 사교육 왕국다운 일이다. 약싹빠른 부모들은 벌써부터 눈터지게 몰려들겠지만 어지간한 상식을 가진 서민들로서는 도무지 어림이 서지 않는 일이다. 조기 전문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외고, 과학고가 엉뚱하게 법대, 의대반 역할을 했던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했던 일을 생각하면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가 아직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었던 시대였던 것 같다. 이제 코흘리개 초등학생에서부터 대놓고 의대반을 조직한다면 아예 시비곡직을 생각할 여지조차도 없는 막장세상이 된 것 같아서 슬퍼진다.


물론 의사야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는 존재이므로 지원자가 많을수록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술을 가르친다는 의대에서는 의사가 절대부족인데도 기를 쓰고 의대 정원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능력과 적성이 다 다르다. 그런 애들을 데리고 의대반을 만들어 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애들의 꿈이 아닌 강요이다. 덮어놓고 강요를 하다 보면 거기에 부응할 수 있는 애들이 인술보다는 안정된 직업, 사회적인 지위, 경제적인 여유, 부모의 소망에 따른 것이라면 본인도 사회도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는 철저한 물신주의가 배어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물질은 중요한 부분이지만 물질이 정신을 능가할 때에 사람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막연한 유신론, 유심론도 문제가 있지만 천박한 물신주의는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배격되어야 한다. 인술이 배어있지 않은 의사는 물신을 따르는 속물일 수밖에 없고, 속물주의는 출세주의에 감염되기 쉽다. 출세는 사람의 당연한 욕구이겠지만 어릴 때부터 출세욕구는 무한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무한경쟁을 국력신장으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성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경쟁심보다는 꿈과 낭만, 사랑, 이상을 길러주어야 할 어린이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쳤던 결과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이잖은가?


사람은 각기 다른 개성, 소질, 적성, 기호를 가지고 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 보편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특성화하기 위해 고등학교에서부터 직업교육을 한 지는 오래전 일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초딩까지 소급된다면, 그것도 사교육에 의하여 불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후예들은 화상을 입은 풋과일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어린이는 화상을 입고, 어떤 어린이는 동상을 입는다면 특성화도, 보편화도 실패하는 교육일 수밖에 없다.


하기야 옛날에도 조기교육이 있었고, 그것은 늘 과거(科擧)시험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엘리트교육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주입시킨 과거공부는 결국 몰개성, 출세주의에 의한 속물들을 양산해냈다. 과거제도는 고려와 조선을 망하게 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우리뿐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거제도는 유약한 文士만 길러내는 편향된 인재선발 제도였다. 과거제도가 확립되기 전의 중국은 서구에 앞서는 문화였으나 그런 제도가 없었던 서구가 과거제의 폐단에 신음하는 중국을 유린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교육과 인재선발 제도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우리의 애들을 제발 애들답게 키웠으면 좋겠다. 애들에게 무엇보다도 꿈과 낭만과 사랑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부모의 대리만족이 아니라 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방임과 사랑이 다르듯이 간섭과 사랑도 다르다. 초딩의대반 편성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소유로 생각하는 탐욕이 아닐까?


탐욕과 대리만족을 위한 의사에게서 정상적인 인술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봉착한 물신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 탁락한 윤리도덕- 이런 것들이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맞은 건국 이래 최대위기 인구절벽의 주범도 이런 교육을 받아온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자녀양육과 교육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그들에게 또 초딩의대반이라니? 이러한 사회환경에서 결혼과 출산이 어찌 공포가 아니랴? 망국적인 사교육을 혁파하는 것이 인구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고, 물신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우리가 살 길임을 깨달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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