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래 군인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채명신 장군은 생전부터 호평을 받았던 군인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의 다큐 유튜브 채널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별이 세 개인 중장이면서도 사병묘역에 묻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라도 충분히 존경스럽다. 분수를 어기고 억지로 국립묘지 큰 곳을 차지하려고 애쓰는 인사들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그 중에는 끊임없이 파묘를 요구받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역사적으로 군인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군인은 물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는 존경할 만하지만 군인으로서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물론 채명신보다 더 훌륭한 군인이 또 있겠지만 채명신에 대한 평가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아는 바로서는 그는 가장 위대한 군인이었다. 그가 중장이었다는 것은 그 조건에 들어가지 않는다. 훈장과 별을 여러 개씩 단 장군 중에는 자신의 본분보다는 애써 시세에 부응하고, 약삭빠르고, 아내를 잘 만나고, 운이 좋은 처세꾼들이 참 군인으로서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별을 달지 못한 무명장교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내 군 경험으로 얻은 결론이다. 세상이란 늘 그런 줄도 모르지만 군대마저 이렇다면 전쟁이라도 나면 정말 큰일이다. 아무리 국방비를 늘여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채명신 장군에 대하여 내가 아는 것은 TV에서 본 것이 다이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를 중심으로 꾸며진 평전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객관성을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보기 드문 군인이라는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TV로 본 채 장군의 단면을 거칠게나마 말한다면 그는 인격을 갖춘 덕장(德將)이었다. 그는 초대 월남파병 사령관이었다. 외국 주둔군이라면 당연히 구원자 같이 시혜적인 교만한 자세를 가졌을 것이지만 그는 그런 티를 드러내지 않았고, 실제의 작전에서도 인도주의로써 민간친화적인 작전을 펼쳤다. 그가 내세운 작전 원칙 중의 하나는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동족에 대하여 초토화 작전을 펴서 수많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던 옛날 우리 군인들을 생각하면 그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참 군인이다. 모택동의 전략에 밝은 그는 베트콩과 민간인을 분리하는 전략을 펼쳤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민지원과 대민친화사업을 벌였다. 그래서 월남 민간인의 도움과 제보를 얻어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소중한 부하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엄청난 희생과 전비와 포탄을 쏟아붓고서도 점령군의 교만으로 끝내 패전한 미군과는 전혀 다른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미군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중대단위 전략으로 효율적인 대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월남전 당시 한국인이 무책임하게 월남 여인을 임신시켜 이른바 따이한 사생아를 많이 만들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장군은 우리 군인들은 전투에 열중하느라 월남 여인들을 가까이할 수조차 없었다고 항변한다.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부하들에게 주둔군으로서 인도주의적인 대민처신을 강조했던 것이다. 당시 월남에는 군인 말고도 군속, 노무자, 주재원들이 많았다.
그는 주월사령관일 때도 기회 있을 때면 늘 국립묘지를 찾아가 주월군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 그 전사자들에게 지휘관인 자신의 잘못이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무덤은 장군묘역이 아니라 사병묘역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실제로 사병묘역에 사병과 똑같은 규모로 만들어져 있다. 대개 장군의 긍지와 자존심 명예심을 생각할 때 이는 상상조차 어려운 고매한 군인정신이다. 부하를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장군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는 파월사령관으로서 혁혁한 공적을 쌓았지만 중장을 끝으로 예편되었다. 당연히 군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박정희의 장기집권에 찬성하지 않은 것이 미운털이었다고 한다. 진급을 앞둔 군인이 절대독재자의 뜻에 찬동하지 않은 것은 군인으로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독재자에게 소신과 양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늘 독서를 즐겨 인격은 물론 군사 전략에도 해박하였고, 반공주의자로서 공산당 전술에도 정통하였다. 그가 월남파병을 앞두고 각오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 미군사령관과 월남군사령관하고 싸우러 가는 길이다.’ 베트콩과 싸워야 할 사령관으로서 이상한 말이지만 적보다는 국익을 위해서 싸워야 함을 말한 것이다. 점령 주둔군으로서 미군과 월남군과의 전략적 역할분담에 대해서 국군의 희생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만약에 전후에 승자로서 미국과 전후 복구사업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는 단순한 군인을 넘는 전략가였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찌 보면 이러한 장군의 인도주의 정신은 기독교 사랑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군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은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군인의 신앙이란 겉치레이거나 마지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요 가장이었다는 점에서도 존경할 만한 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