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론 2

by 김성수



일 년여 전에 브런치에서 ‘끼니론’을 편 적이 있었다. 세 끼의 맹목적인 습관성을 지적하고, 나이와 편리성을 들어 두 끼론을 내세웠었는데 결과적으로 생각이 짧았던 일이었다. 그때에는 두 끼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고, 그 내용도 비교적 정연했다고 자부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주장은 적어도 나하고는 맞지 않은 것이어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물론 두 끼론도 그 당위성과 장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었다. 우선 노년에 먹는 것이 줄다 보니 자연히 체중과 근육, 지방의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늙어 살이 찌는 것을 경계한 시대도 있었지만 요즘의 의학자들은 노년에는 마른 체형보다는 비만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들 한다. 구태여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마른 체형은 사람을 왜소하고, 허약해 보이게 한다. 줄어든 근육과 지방은 피부를 얇게 하고, 주름살을 더 깊게 하여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게 한다.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이런 현상은 노화를 더 촉진하게 한다고도 한다. 장수에 탐닉하는 것도 볼성사납지만 구태여 끼니를 줄여가며 명 재촉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살이 빠지다 보니 엉덩이가 배겨 의자에 앉아있기가 매우 불편하다. 전에는 앉아있기가 서있기보다 편한 자세였는데 졸지에 불편하게 되었으니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걷다가 다리가 아픈 것은 남녀노소가 마찬가지이지만 앉아있기가 어렵다면 이제는 천상 누워있는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흔히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가 살만한 세상이라고들 한다. 사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으면 건강에도 안 좋다고 하고, 실제로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앉아있기마저 불편하다면 보통 심각한 사태가 아니다. 더구나 궁둥이가 배겨서 견디기 어렵다면 산다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내가 더 살 수 있는 길은 엉덩이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 우선 먹는 양을 늘리는 것이고, 당연히 끼니를 세 끼로 원위치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노년에 두 끼로 살다가 한 끼니를 늘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배도 고프지 않은데 때에 밀려 억지로 밥을 우겨넣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적어도 세 끼를 두 끼로 줄이기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소화제를 달아놓고서 밥을 먹는다면 살로 갈 것 같지도 않다. 당연히 운동과 활동을 늘려야 하지만 그러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딱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부지런히 배를 비워 끼니를 늘리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아침은 되도록 일찍 먹고, 저녁은 늦게 많이, 점심은 거르지 말고 챙겨 먹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되도록 운동은 더 하고, 먹는 양은 많이, 단백질 섭취를 최대한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일 년 전에 잘난 척하며 두 끼를 자신하던 일이 새삼 쑥스러워진다.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어설픈 주장을 함부로 나발불었던 경박한 행동이었다.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사려 깊지 못한 말을 내뱉었으니 나잇값을 못한 일이다. 자신이 발표한 글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 했으니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한 일을 은근슬쩍 넘어간다면 더욱 나잇값을 못하는 일이라서 지금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계제에 내가 쓴 다른 글에서도 이런 망발이 없는지 살펴야 할 일이다. 특히 시사적인 글은 그럴 가능성이 많다. 세태와 인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오류나 착오가 많기 쉽다. 앞으로는 시사에 민감한 일은 가급적 언급을 회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는 정말 목불인견이라 모른 척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때마다 곧이곧대로 감정을 토로한다면 경솔하거나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나이 들어 가장 두려워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글을 쓴다면 가치나 의미를 찾기 어려운 맹탕 글이 될 테니 또한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렇기로 말하면 구태여 낯두껍게 브런치에 공개할 필요도 없이 혼자 일기나 쓰면 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괜히 어지럽게 글을 흩뿌려 사람들에게 글 짐을 지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냥 글재주나 자랑하며 작가 생색이나 내는 것으로 그친다면 하필 궁둥이 불편을 참아가면서 구태여 의자에 앉아서 궁상을 떨 필요가 있을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참 군인 채명신 장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