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브런치에서 두 끼를 먹을까, 세 끼를 먹을까를 두고 끼니론을 펼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배부른 투정을 부렸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끼니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한가하게 끼니론을 말하기 미안할 만큼 끼니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아졌다고 하니 내 끼니만 늘어놓는 짓은 독선이요, 이기주의를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고등학교까지 무료급식이 정착한 걸 보면 과연 선진국에 손색이 없는가 싶었다. 그러나 국민의 1/5 이상은 노인이고, 노인의 다수는 끼니 걱정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노구를 끌고 돈을 벌어야 하고, 폐휴지를 찾아 헤매고, 무료급식소를 찾아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가 선진국이 맞나 싶다. 또 요즘 듣자 하니 젊은이들은 물가가 뛰어 하루 두 끼 먹기도 사치라고 한다. 빈곤한 늙은이도 딱하지만 한창 공부하고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돈이 없어 두 끼 챙겨먹기도 바쁘다면 나라의 장래가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는 통치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박정희 대통령이 나라의 가난을 구제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그때보다도 국민소득이 훨씬 높아졌고, 경제대국 선진국으로 들어섰으니 끼니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아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끼니 걱정하는 국민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보다 더 많아졌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경제는 잘 모르지만 가진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게으르고 무능한 국민이 많아서가 아니라 3만 5천 달러나 되는 국민소득이 심하게 편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사회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빈부격차를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치부한다면 우리는 윤리적 무감각이요, 도덕적 타락에 빠진 것이 아닐까? 국민의 가난을 구제한 박 대통령이지만 자유와 인권은 보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자유와 인권은 성장시켰지만 공정을 지켜내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짬만 나면 공정과 자유를 외치지만 어이없게도 지금 국민에게 가장 목마른 것은 바로 자유와 공정이다. 자유는 정부에게만 있고, 국민에게 공정은 없다. 적어도 끼니로 말하면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시대보다 못하다. 그때의 노인들은 끼니 걱정하는 일이 적었으며, 젊은이들이 밥을 굶는 일은 없었다.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선진국에 들어섰다면 성장보다 소득의 분배에 더 치중해야 할 단계이다. 그래야 우리가 바라는 복지사회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선진국을 자처하면서도 국민이 끼니를 굶는다면 나라가, 재벌이 아무리 돈이 많은들 국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재벌이 떨어뜨린 낙수를 받아 국민이 끼니를 이어야 한다면 복지사회는커녕 노예사회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부자와 기득권 감세를 밀어붙이고, 재벌 성장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노동운동을 덮어놓고 귀족노조의 횡포로 규정하고, 끼니조차 힘든 노동자를 혹사하고 구속하는 정책을 합법화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기득권과 가진 자의 횡포이다. 소득분배와 기회의 공정을 주장할라치면 여지없이 색깔론으로 윽박지른다. 색깔론은 미술이나 흑백 인종갈등도 아닌 우리만 가지고 있는 해괴한 이념갈등이다. 6.25의 트라우마를 역대 정권들이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술책이다. 해방전후에나 있을 수 있었던 색깔론이 지금까지 횡행하고 있으니 이래도 민주주의, 선진국 타령을 해도 좋을까 싶다.
소득의 공정과 균형을 공산당식 나누어 먹기라고 몰아부친다면 공산당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나보다. 노동의 기회를 공정히 하고, 능력대로 소득을 거두고, 모든 국민이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노동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생계를 도와주는 사회가 옳다면 그것의 이념이 무엇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로는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내세우더라도 이것이 부정되면 그것은 허황된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말끝마다 민주주의와 색깔을 내세우는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 이념에 얼마나 충실한 나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OECD국가 중에 우리나라는 정부 청렴도가 아주 낮고, 부의 편중이 매우 심하고, 자살률이 가장 높고, 노인층이 가장 빈곤하고, 청소년이 가장 불행하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선진의 민주주의 사회, 복지사회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경제, 외교, 국방의 난맥상을 토로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언급을 않겠지만 국민이 끼니를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국민의 끼니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나라에서 누가 결혼해서 출산하고 싶어 하겠는가? 우리에게 닥친 문제 중에 인구절벽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지만 정치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입맛이 저절로 떨어지니 내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정권이야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겠지만 국민의 의식은 좀처럼 바뀌기 어려운 국민의 수준이다. 현 정부는 국민의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콘크리트 소수 지지층에 의지하여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수법으로 정권유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통일은 고사하고 국론마저 분열시켜 나라가 망하건 흥하건 정권유지만 하면 된다는 배짱으로 보인다. 지금 끼니를 가지고 한가하게 노닥거릴 때가 아닐 것 같아서 참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