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국격(國格) 2
국가원수의 언행에 대하여
정치문제는 언제나 변화무쌍하고, 갈등과 대립이 심하다. 더구나 나는 거기에 대한 식견이 짧고, 다른 사람들이 치열하게 논란을 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 그러나 이번 일은 아무래도 그대로 넘기기 어려워 ‘국가원수의 언행’에 대해서만 한정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국가원수는 나라의 대표요 상징이다. 당연히 그 언어도 그렇다. 그래서 대통령의 언어는 특별히 정제되고 진중해야 한다. 더구나 외교무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교적 단어 하나에도 의미의 정확성과 모호성, 상징성, 책임성 등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말 한마디가 천 냥 정도가 아니다.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력에 유창한 화술이 필요하다. 어눌하고, 말실수가 잦으면 큰 결격사유이다.
우리말에는 존비법이 엄격해서 그 어법을 잘 지켜야 한다. 더구나 국가원수는 나라를 대표하므로 외교무대에서 대화나 연설을 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나라를 대표하므로 상대방이 아무리 나이가 많거나 강국이라도 지나친 겸양이나 높임말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고유 칭호는 당연하겠지만 서술어에 높임말, 예컨대 ‘시’와 같은 높임어미를 사용하는 것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런데 과거의 대통령들은 대체로 이런 의식이 부족하여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을 많이 해왔다.
윤 대통령은 이런 것 말고도 돌발적이고, 거친 언어로 평소에도 말썽이 많았다. 외국 방문 때마다 국가원수로서 사려 깊지 못한 언행으로 설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윤 대통령이 이번 방미 중에 미국의회에서 40여 분을 영어로 연설을 했다고 하니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는 말인가? 생각건대 자신의 영어 실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인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서였을 것이나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하는 목적은 자기과시나 상대국의 기립박수를 받자는 것이 아니다. 화자보다 더 유능한 번역기가 있으니 선진국의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구태여 영어로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런 기회에 모국어 연설을 통하여 나라의 존재가치를 높일 좋은 기회로 삼아야 옳았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일 경우에는 환심을 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나라의 품격을 손상시키는 짓이다. 바이든이 윤 대통령의 재능을 칭찬했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재능’이 아니라 귀여운 ‘재롱’으로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최강국의 대통령 바이든이 아쉬워서 찾아온 대통령이 영어연설을 하고 팝송을 부른다고 해서 대한민국을 존중할 리가 있겠는가? 오래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어설픈 중국어로 연설했었다. 그 모습이 옛날 신라 진덕여왕만큼이나 귀엽게 보였을테니 역시 재롱꾼을 면할 수 없었다. 그 재롱꾼을 천안문에서 성대하게 국빈대접을 해 주었더니 불과 몇 달도 못 가서 졸지에 미국의 사드를 들여왔으니 중국의 사드 보복이 아직도 시퍼렇다. 외교란 이렇게 살벌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언어의 품격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윤 대통령이 영어의 달인이 아닌 한 그렇게 긴 시간을 연설하기 위해서는 필시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에 열중해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긴 연설문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외울 정도가 되려면 몇 날 며칠 가지고는 어림없을 일이다. 일국의 원수가 막중한 국가 대사를 앞두고 영어연습에 몰두했다면 정작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정상회담 준비에는 소홀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번 미국방문은 그동안 균형을 유지해왔던 중국과 소련을 졸지에 적으로 삼고, 미국에 올인한 것이라서 온 국민이 살 떨리게 우려하는 회담이었다. 생각있는 국민이라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수십 년 이어온 기존의 외교책을 하루아침에 농단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도발적 언행으로 미국의 돌격대를 자처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에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개념이 없는 짓이다. 그것이 그토록 부르짖는 대통령의 자유인가? 국내에서는 온간 탄압과 압수수색을 밥먹듯 하면서 외국에 나가기만 하면 자유타령이니 독재를 감추려는 수사가 아닌가? 미국이 우리를 애써 국빈으로 모신 이유는 우리를 앞잡이로 만들려는 사탕발림이다. 외교에 공짜가 있을 리 없는 법이니 노회한 책략가 바이든의 환대를 보고 오히려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빈방문에 우쭐대고, 그야말로 선언에 불과한 '워싱턴 선언'을 외교성과로 자랑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아는 짓이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건곤일척의 회담을 앞두고 피 말리는 외교전략에 몰두하는 대신 영어암기와 팝송 연습에 열중했다면 국가원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윤 대통령의 언행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번 방미는 또 외교참사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본에서 죽 쑨 솜씨로 미국에서 스타벅스를 기대한다면 메추리가 여의주 낳기를 기다리는 꼴이 아닐까?
옛날 외국에 있을 때 우연히 김일성이 중국 정상을 맞이하는 환영연설을 들어본 적이 있다. 처음 들어보는 김일성은 생각보다 목청도 좋았지만 그 당당한 연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대표단에 대한 호칭을 거침없이 ‘당신들’이라고 부르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호칭 하나로도 북한의 국격이 드러나는 듯했다. 그때는 그들의 주체사상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지금 우리 대통령들의 외교언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얘기하면 벌써 빨갱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의 빨갱이 트라우마 내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빨갱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으로 국민이 분열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언어 하나로 독단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말은 ‘사람의 얼’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윤 대통령이 나름 무슨 깊은 국량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어 연설과 팝송 열창을 보고서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치기어린 그 재롱에 국민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까? 살벌한 국제정세에 이런 저품위 외교와 어설픈 통치를 언제까지 지켜보아야 할까? 우리는 언제나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대통령이야 임기가 있지만 국민 수준은 임기도 없다. 그러니 뼈저린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나 유능한 대통령을 선출할 수준을 갖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