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교관계를 말할 때에 친(親)- 이라는 접두어를 많이 사용해 왔는데 대개 뒤끝이 좋지 않았다. 親元파와 親明파가 대립하다가 고려가 망했고, 친中, 친러, 친日파가 각축을 벌이다가 조선이 망하더니, 근래에는 親日, 親美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으니 어쩐지 불안하다. 누구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치 않건만 그런 말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한가로이 붓놀음이나 할 때가 아닌 듯하다.
親은 원래 양친부모, 친척 등 혈육관계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의미가 확대되어 친구같이 가까운 관계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親日이라는 말은 일본과 혈육관계로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가깝다는 의미일까? 조선 매국노나 친일 행각자들은 나라를 팔아먹었으니 혈육 이상으로 일본의 주구들임에 틀림없다. 주구(走狗)란 주인에게 무조건 충성을 바치는 개들을 일컫는 말이다. 현 정부를 찐일, 친미 정부라고 말해도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윤 대통령의 대美, 日외교는 친구외교일까, 아니면 주구외교일까?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면 친구요, 일방적 손해를 당했다면 주구일 것이다.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고, 일본한테는 늘 피해를 입어왔으니 아무래도 친구 사이는 아닐 것이다. 외교란 당연히 국익을 위한 것인데 현 정부의 외교가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 아니면 해악이 되는지 냉철히 따져 보는 것이 국민의 의무요, 권리이다. 만약 불행히도 과거와 같은 친일이라면 나라는 치명상을 입거나 어쩌면 쓰라린 전철을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을 언제까지 적대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일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 나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親의 반대의미로는 反이 있다. 우리의 국시((國是)인 反共이 그것이다. 북한은 해방 이후 줄곧 몹쓸 짓만 해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 러시아에까지 反중, 反러를 선언한 것이 과연 국익을 위한 것일지는 의문이다. 과거의 은원관계를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서 그들을 적으로 삼는 것은 외교의 상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 친미를 위해서 우리는 거침없이 반중, 반러의 길로 내닫고 있다. G2 시대에 즈음하여 과거 수십 년 동안 보수, 진보정권을 불문하고 애써 균형외교를 구축해 놓았건만 현 정부는 하루아침에 공든 탑을 허물어버렸다. 그리고서 태평양을 건너서 노골적으로 미국 편을 선언했다. 그런 미국은 해방 이후 혈맹이었지만 애치슨라인으로 우리를 포기한 역사가 있고, 지금도 미군철수, 방위비 분담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어떨결 윤 대통령이 바이든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덜컥 위험한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일촉즉발의 극한대립에서 한쪽에 올인하는 것은 나라와 국민을 담보로 해서 벌이는 위험한 전쟁도박이다. 이를 수수방관해도 우리는 여전히 현명한 민주시민이고, 민주주의 국가일까?
외교에서 親이나 反은 위험한 용어들이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으니 항상 ‘애매모호’가 노련한 외교의 기본이다. 더구나 지금같이 절대강자가 없는 다자구도 정세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대놓고 ‘친일’이니, ‘반중’이니 하는 것은 외교의 원리를 잘 모르는 짓이다. 강대국에서는 親이나 反적인 외교책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힘을 가지고 약소국을 다룰 지혜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아무리 親美, 親日을 내세워도 그들은 우리를 이용할 知韓만 있을 뿐이다. 노회한 바이든, 기시다에게서 윤 대통령이 바라는 성과를 기대한다면 어리석거나 순진한 국민이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계산과 지식을 쌓았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미국이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서 무슨 수단을 부리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더구나 상대에 대한 이해도 없으면서 나라를 담보로 하여 親, 反의 외교노선을 함부로 농단하고 있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약소국으로서 외교를 하자면 굴욕을 당할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대건, 조공이건 성공할 수 있다. 현 정부의 외교책이 옳다면 그동안의 균형외교는 잘 못되었다는 말인데 집권 일 년도 안 되어 종래의 외교원칙을 비웃을 만큼 국제정세를 잘 파악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의 외교는 대한민국을 매우 위험하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는 G7을 바라볼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무모한 도박외교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성과를 단시일 내에 날리게 될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원래 ‘날리’는 행동을 잘해서 더 걱정이다.
윤 대통령의 미국방문은 미국의 亞太전략에 선봉을 자청한 셈인데 이로써 한반도를 자칫 전쟁터로 만들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끼어들어 세계평화를 호언하고 있으니 윤키호테가 아닌가? 민주국가에서 어디에 대통령에게 선제타격권, 국민살상권이 있는지 따져봐야 민주시민의 자격이 있을 것이다. 전쟁이 터져 세계 굴지의 산업자산이 날아가고, 핵발전소가 파괴된다면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일본과의 군사동맹은 무슨 결과를 낳을지 두려운 일이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험은 제쳐두고 전 정부나 비난하고, 야당인사의 비리 캐기에만 열중한다면 일의 경중을 모르는 치기어린 짓이다. 이른바 ‘거짓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방 외교보다는 차라리 줄타기 외교가 맞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지혜를 갖추어 知미, 知일, 知중, 知러의 자세로 균형외교를 복구해야 한다. 외교는 범죄자를 압색, 구속하는 검찰청도 아니고, 편가르기하는 정쟁판도 아니다. 국민의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고 헤집고 다니는 해괴한 '王짜' 외교를 방관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