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타고났다. 사철이 분명하고, 자연수를 그대로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국토가 좁은 것은 우리의 탓이지 자연의 탓이 아니다. 난처한 강대국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위치도 하늘만 원망할 일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는 그렇다 치고 일본이 언제부터 강대국이었던가? 우리도 여기에서 옛날에는 만주 벌판을 호령하였고, 그때 일본은 미개한 섬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지정학적 불행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책임이다. 국력이 모자라면 그럴수록 고도로 세련된 외교정책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보아도 우리의 외교정책은 안타까울 정도로 서투르게 보인다. 생각건대 뿌리 깊은 사대주의와 지극히 소극적이고 단순한 외교 논리에 익숙해져 온 결과가 아닌가 한다.
문외한의 얕은 생각에도 국방, 외교란 그렇게 단순하고 순진한 일이 아니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외교란 內治내치와 달라야 한다. 집안 식구와 남을 똑같이 대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집안에서는 신뢰와 사랑이어야 하겠지만 대외로는 이익과 경쟁이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식구처럼 가까운 남도 있을 수 있지만 남일 수밖에 없는, 개중에는 적과 같은 남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봉건주의가 발달했던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우방에 대한 交(친선)와 적에 대한 攻(적대)으로 구분하여 외교책을 세웠다. 외교의 기본인 近交遠功근교원공이란 가까운 나라와는 사귀고, 먼 나라는 적대시한다는 외교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약자일수록 약자끼리 뭉쳐서 강자를 대처하는, 이른바 合從합종외교책도 우리에게 적합한 외교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한 近攻遠交근공원교는 이웃을 적으로 삼고, 먼 나라를 우방으로 삼는 것으로 이는 강자가 약자를 다스리기에 적합한 외교책이다. 약자로서 멀리 떨어진 강자인 미국과는 친선관계이고, 분단 동족인 북한과는 심각한 적대적 관계이니 우리의 근공원교 외교책은 처음부터 순리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동족인 이웃을 近攻근공의 적대국으로 삼았으니 애초부터 동족상잔의 비극적 외교책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방인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으니 遠交원교의 친선이 쉽지 않다. 그나마 주한미군이 있으니 가능한 구도이지 멀리 떨어진 미국은 외교적으로 불리한 우방임에 틀림없다. 주한미군은 항상 가변적, 유동적이어서 심심하면 미군철수론이나 높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 갈수록 협박처럼 튀어나온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외교책으로 이럭저럭 70년을 유지해 왔지만 결코 바람직한 구조가 아니다. 당연히 이웃을 가까이하고 적은 멀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건만 그렇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혹은 이 모든 것이 세계정세에 의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할지 모르지만 조선의 멸망이나 남북 분단, 약소국이 되어버린 것은 결국 우리의 책임이 분명하고, 그 역사적 책임은 우선 분단된 민족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역사의식을 갖는 것이다.
외교를 말하기 전에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많다. 폭 4km도 안 되는 휴전선은 지구상에서 우리에게만 있는 비극적인 현장이다. 우리는 대륙과 붙어있는 반도국이지만 섬나라만도 못하다. 비행기도, 배도 북한 땅을 지날 수 없으니 지척의 북한은 남극보다도 멀다. 전설에 弱水약수라는 물이 있다는데 부력이 전혀 없어 새 깃털마저도 뜰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국토가 분명한 북한은 깃털은커녕 하늘을 나는 비행기마저 지나갈 수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비극적인 분단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해결 못한 책임을 강대국한테 전가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북한이 우리의 영토라는 말에 놀라겠지만 -더 놀라운 일은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대한민국에 북한이라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헌법에 분명히 명시된 역사적 사실이다. 철없는 우리 정객들이야 어쩔 수 없다면 국민이라도 좀 깨인 생각을 해 보자. 조국을 분단시켰고,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엄청난 국방비를 유발하고, 아무리 망나니 같은 북한정권이지만 우리한테 북한은 영원히 용서할 수 없는 원수여야 하는가,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 할 동족인가? 분단된 조국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북한에게만 돌린다면 역사에 뻔뻔스러운 짓이다. 우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유야 어쨌건 동족끼리 물어뜯으면서 어떻게 강대국 사이에서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보니 겁이 덜컥 난다. 이런 말은 좌경, 종북, 빨갱이들이 하는 말이 아닐까?
假道滅虢가도멸괵이란 말이 있다. 춘추시대에 괵이라는 약소국이 있었다. 강대국 晉진이 虞우를 친다는 명분으로 괵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니 힘이 약한 괵으로서는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길을 빌려주는 것으로 위기를 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지만 晋은 虞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결국 괵도 멸망시켜버렸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괵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약소국의 처지인 虢괵과 虞우는 서로 긴밀하게 의지하는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으므로 脣亡齒寒순망치한이라고 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빨은 보호막이 없어 위험에 노출된다. 괵이 저만 살고 보자는 심산으로 강대국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결국 虞우와 같은 운명을 면치 못했다. 죽으나 사나 약자는 뭉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남북관계가 마치 원수와 같이 지내지만 알고 보면 약자인 동족이니 당연히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할 처지가 틀림없다. 북한이 호전적이고, 기만전술에 능하고, 믿을 수 없는 상대이지만 우리라고 그동안 북한에 신뢰를 쌓아온 것은 아니었으니 철없는 정객들처럼 북한만 탓할 수 없다. 놀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김일성보다 이승만 남한 정부를 먼저 세웠으니 알고 보면 우리가 분단을 먼저 선언한 셈이다. 끔찍한 6.25도 겪었지만 골칫거리 동생이라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살아야 한다면 참담한 일이다. 과거의 햇볓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은 민족 자멸의 길이다.
북한이 밉다 보니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만 고대하고, 그러면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은 순망치한의 관계이다. 북한이 없어지면 중국으로서는 미군과 직접 국경을 맞대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듯이 중국도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북한은 핵이 북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이 무너지면 미군과 직접 국경을 맞대 놓고 대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그런 극한 상황을 막아주는 든든한 보호벽이니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중국이 북한을 멀리 하는 척하더라도 그것은 제스처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이 북한을 제치고 우리 편에 서 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 있으니 우리의 외교가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중국의 주적은 미국이고, 북한은 미국에 맞서는 척후병이요, 선발대인데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만을 고대하고 있지만 북한이 붕괴되면 당장 중국이 강을 건너 순식간에 북한을 점령할 것이다. 옛날에 소련이 그랬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군사력으로 막강한 중국을 북한에서 쫓아낼 수 있겠는가? 슬픈 일이지만 북한 정권의 붕괴는 곧 북한의 상실을 의미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에서는 선제타격을 운운하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손꼽아 기다리고, 중국에게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 달라고 하고, 북한에게는 그 생명선인 핵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고, 답답한 불통외교책이다. 與虎謀皮여호모피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에게 네 가죽을 어떻게 벗기느냐 묻고, 북한에게 '너희들을 어떻게 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으니 숫제 바보 수준의 외교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아무리 비핵화를 요구해도 북한이 생명선을 포기할 리 없다.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안고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는 순간 미국에 잡혀먹는다고 믿고 있다. 죽더라도 호랑이 등에서 핵무기를 안고 자폭하려는 막장전술이다. 북미회담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지만 북한의 자폭이 두려운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 대륙간 탄도미사일 정도이지 우리가 고대하는 불가역 비핵화는 불가능이다. 그런 형편에 우리가 비핵화를 요구한다고 북한이 들어줄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북핵을 없앨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야당에서는 비핵화 없이는 북한과 대화마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심스러운 무지이거나 교활한 국민 기만술이다. 미국에 속고, 정부에 속고, 야당에 속고, 언론에 속고, 가짜 뉴스에 속아야 하는 대한민국은 늘 고달프다.
일본이나 미국도 우리가 없으면 마찬가지 사정이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하면 미국과 우리의 관계는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보다 절실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태평양전쟁 후에 미국이 우리 편에 선 것은 일시적인 전후처리의 과정에 불과하다. 지금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우리보다 일본의 힘이 필요한 시대이다. 지금 미국에 부탁하여 일본의 무역보복을 막아달라고 한다지만 이는 국제정세에 어둡거나 정치적 제스츄어에 불과하다. 미국이 일본의 뜻을 거슬러가면서 우리를 도와줄 리가 없다. 중국한테 북한은 든든한 성벽이지만 미국한테 우리는 日本城일본성 밖에 있는 거점 전략지에 불과하다. 성 밖의 거점은 전략상 언제든지 포기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주한미군은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그들 말을 빌지 않더라도 공산주의 이념을 같이 한 혈맹이지만 미국과 우리는 이념 내지 이익 거래 관계로 친밀도, 결속력이 저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근래 미국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 우리는 입술이 아니라 마스크 정도에 불과하다. 트럼프가 FTA 폐기를 들고 나오고, 끊임없이 엄청난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우방이 아니라 드라큐라가 아예 마스크까지 벗기고 빨대를 물고 대드는 꼴이다. 이런 판에 성조기를 흔들며 나라의 운명을 맡기자는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을 누비고 있다.
이런 형편에서 막무가내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시켜 항복을 받아내 멸공통일 되기를 기대한다면 국제정세를 전혀 모르는 유아적 발상이거나 국민을 속이는 술책에 불과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의 형편으로는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도 통일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압도적이어야 독일통일을 모범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면 국토마저 지켜내기 어렵다고 전시작전권마저 포기한 주제에 대북정책을 보면 미국 같은 강대국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니 북한 정권이 우리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계 10위권의 국력으로 세계 최빈국의 북한과 치졸한 동족상잔을 벌인다면 형님으로서 도무지 체면과 위엄이 서지 않는 일이다. 현 정부에 북한에 굴욕외교를 한다고 난리지만 그것은 굴욕이 아니라 아량이요, 관용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주한미군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절대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신고립주의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만약 차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바뀐다면 어떤 대책이 있을지 궁금하다. 만약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국력을 기울였던 북한의 핵 제거, 대북 압박 정책이 허사가 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메랑이 된 거센 후폭풍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북핵이 있는 한 한반도 평화와 남북대화는 있을 수 없다는 그동안의 정치논리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정치외교에 문외한도 이렇게 답답한데 지각 있는 인사들이야 오죽하랴? 외세의존 국방, 깜깜이 국제정세, 답답이 철부지 정권에 맹종한 결과는 결국 국민이 감당해야 할 짐이 되었다. 전시작전권도 없어 남에게 국방을 의지하면서 북한과의 극단적 대립을 고집한다면 狐假虎威호가호위가 아니라 미련한 여우가 교활한 호랑이에 의존하는 꼴이 아닐까?
남북분단의 역사는 이렇게 설명하기 어려운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대원군, 민비는 시대의 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져가는 조선을 구하기에는 턱도 없었다. 지금 그 정도의 인물도 만나기 쉽지 않다면 우리의 처지가 구한말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 같다. 오로지 중국에 운명을 걸었던 옛날의 대원군과 지금의 북한, 일본과 러시아의 눈치나 살펴야 했던 조선의 민비와 오로지 미국에 매달려야 하는 남한이 복잡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혼자만의 잔망스러운 착각일까? 단언컨대 미국도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 줄 수 없다. 일본을 생각하면 더욱 불안하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지켜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북핵의 제거보다 조국의 통일이 더 급한 일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국통일은 안중에도 없이 색깔론과 지역감정이 판을 치고, 전시작전권마저도 포기한 채 어설픈 외교책으로 허둥대는 지금, 조국의 미래에는 아랑곳없이 마냥 ‘대-한민국’이라는 응원가만 외치고 있다면 지각 있는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외칠 때마다 축구를 이기는 데에만 골몰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이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조국의 앞날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지각 있는 국민이라면 눈앞의 안일과 행복보다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국민이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