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등의 비극
트럼프의 카드에 놀아나는 불쌍한 새우들.
조선왕조가 처음부터 표방한 외교원칙이 事大交隣사대교린이다. 큰 나라는 섬기고, 작은 나라와는 가까이 지내자는 말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일국의 외교정책이 아니라 철저한 계급주의였던 儒家유가에서 말한 생활철학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을 섬겨야 하고,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가깝게 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것이 조선에서 강국은 섬기고, 약하면 다독인다는 외교정책으로 채택된 것이다. 순수한 개인 교제 관계에서는 옳은 말이지만 살벌한 국익이 충돌하고 이익이 극대화되어야 할 외교정책, 독자적인 국가시책, 험난한 외교전략, 자주국방 책으로는 매우 부적절한 원칙이다. 당시에 강국은 明명이요, 이웃은 女眞여진, 倭왜였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웃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전쟁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고질적인 사대주의 외교의 근원이었고,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은 될 수 있어도 독자적이고 근본적인 외교 국방 책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소극적인 외교책은 조선왕조를 무기력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 더구나 교린의 대상이었던 왜와 여진에게마저 혹독한 수모를 당해야 했다면 이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외교원칙이었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외교원칙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 아마도 반공친미(反共親美)가 아닐까?- 주변은 모두 강대국이고, 交隣(교린) 할 상대는 별로 없어 보이니 지금은 조선 말기와 다를바 없다.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중국의 고사가 있다. 鄧間於齊楚'등간어제초'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우리 속담에 꼭 들어맞는 중국의 고사이다. 鄧'등'이라는 약소국이 齊제와 楚초라는 강대국 고래에 사이에 끼어서 등이 터졌다는 비극적인 역사이다. 舊韓末구한말 조선이 중국의 鄧등과 닮았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를 닮지 않았을까? 중국의 ‘鄧등’과 새우 ‘등’의 음이 같은 것은 순전한 우연이겠지만 무슨 곡절이라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鄧등이나 조선 멸망의 역사를 지나간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남북분단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이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남북대화를 하자면 좌경, 종북으로 몰아붙여 말도 못 꺼내게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에게 색깔론이란 흑백 인종차별도 아니고, 색채론도 아닌 우리만의 모질고 저질스러운 정쟁론이다. 어떠한 정치세력들도 색깔론 앞에서는 견뎌낼 수 없다. 말로는 통일대박이라면서 그동안 보수정권의 전가 보도인 색깔론으로 통일과는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진보 정권에서 애써 마련한 대화의 창구 수단마저 족족 끊어놓고 말았으니 이른바 우리의 보수 정치세력들은 통일심술꾼이었다. 그들은 늘 반공을 국시로 삼아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육이오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겠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민족의 통일은 그보다 더 중요한 역사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도 힘과 관용을 가지고 해야 통하지, 전시작전권마저 포기한 채 남의 힘을 업고 벌이는 허세는 압박은커녕 북한의 적개심과 비웃음, 내성만 키울 뿐이다. 전쟁을 벼르고 있는 북한 정권에게 민족에 대한 고민과 동족에 대한 사랑은 없고, 격에 안 맞는 고압적 훈계와 상대방 자존심을 긁어대는 으름장만 있었다. 과거의 남북관계로 볼 때에 우리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거나 고압적인 훈계를 북한이 수용할 리가 없다. 북한이 내세우는 主敵주적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인데 우리는 미국보다 더 악의적으로 북한을 대하고 있었다. 이래 가지고 서야 통일의 기회가 주어진들 민족의 화합이 되겠는가?
북한 정권은 어떤 일이 있어도 ICBM과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유일의 생존수단으로 믿고 있다. 북한이 만약 우리를 주적으로 생각했다면 구태여 국력을 기울여 ICBM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북의 미사일 발사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동력 좋은 단거리 미사일이나 장사포, 생화학무기이다. 그러니 중국과 러시아에서 극력 반대하는 THAAD 배치에 국운을 걸 필요가 없는 일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을 들여놓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것으로 북한 핵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THAAD 배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THAAD는 우리보다는 미국의 전략자산이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전쟁억제가 아니라 자칫 나라를 미국의 전진기지로, 동북아의 화약고로 만들 공산이 크다.
미국이 수천 억 달러의 대외무역적자를 보면서도 끄떡없는 이유는 그 이상의 돈을 벌어들이는 무기 수출이 있기 때문이다. 무기수출국으로서 전쟁 긴장이 없다면 자신이 긴장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전쟁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THAAD를 한사코 배치하려는 미국과 무기상의 입장이 같다면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미국한테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북이 핵무기와 IBRD를 들고 날뛸수록 미국은 THAAD, 핵잠수함, 조기경보기를 위시한 고가의 첨단무기를 우리와 일본에게 팔아먹을 수 있고, 우리의 방위비 부담을 대폭 늘릴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는 것 같지만 김정은을 이용한 고도의 무기판매 전략이 숨어있다. 김정은이야 체제 유지를 위해서 미국과 맞짱을 뜬다고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이야 한나절 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지루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은 북한을 이용하여 무기수출 시장을 최대한 크게 부풀리자는 고도의 책략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사탕발림 같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투견 조련사의 심보이다. 그럴수록 무기수출은 호황이기 때문이다. 알토란 같은 무기수출에 비하면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는 껌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한미 FTA를 파기했으니 우리한테는 껌 값마저 주지 않겠다는 치사한 심보이다. 이것이 성조기를 흔들며 혈맹, 우방이라고 믿어왔던 미국의 실상이다. 김정은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민족을 망치는 망나니이고, 정신 나간 듯이 막말을 해대는 트럼프는 교활한 무기상이다. 트럼프는 이름대로 협상카드놀이의 달인이요, 몰인정한 도박꾼이다. 이런 형편에 우리의 역사와 운명을 오로지 미국에 의지하려 한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이 원리를 모른다면 바보이고, 알고 그런다면 민족의 장래와 정권을 바꿔먹는 기만술책이다.
북핵 긴장은 우리 정권에게 안보정국, 철권통치의 명분을 주는 동시에 부패와 失政실정과 추문을 감추고 덮어주는 특효약이다. 그것은 북한이 우리 안보 정권에게 주는 또 하나의 핵우산이다. 전쟁위기는 남북한 독재자들의 정권유지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역대 독재자들이 끊임없이 전쟁위기를 조성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 때마다 불었던 북풍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남북통일이 되면 둘 중 하나는 정권을 놓아야 하므로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알고 보면 통일조국의 최대 방해자들은 주변강국이 아니라 말끝마다 안보를 일삼는 정객들이고, 최대 피해자들은 당연히 국민이다.
새 정부에서 THAAD의 문제점을 알고, 그 배치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야당의 악의적이고 망국적인 안보 공세와 미국의 압력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거기에다 전술핵 도입론까지 만만찮으니 정부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미친개에 맞서 같이 물어뜯기보다는 개 이빨을 무력화시키거나 그 이빨을 역이용하려는 지혜가 있어야 개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핵무기로 국가안보를 부르짖는 세력들은 미친개와 같이 물어뜯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야말로 말초적인 안보 포퓰리즘일 뿐, 민족의 백년대계가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 얼마나 개선될지 모르지만 지금 형편으로 보아서는 등 터지는 새우 신세나 漁父之利어부지리를 면할 지혜를 기대하기가 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