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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Oct 10.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84

북고산에서 

      

    次北固山下

                   王灣   693-751     

 

 북고산은 강소성 鎭山에 있는 三山의 하나입니다. 시인의 고향 낙양하고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로운 타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고산은 장강의 하류여서 우리로서는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큰 강입니다. 강의 크기는 수평선에서 해가 돋을 정도이고, 나그네가 탄 돗단배는 물결에도 파묻히는 일엽편주일 뿐입니다. 중국의 장강과 운하에는 배를 타고 떠도는 나그네가 많았고,  그래서 이와 같은 선상탄(船上歎)의 직품이 많습니다. 

  이 시는 전형적인 근체시인 5言律詩입니다. 율시는 근체시의 완성형으로 한시의 형식미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율시 8행은 단순히 4행시 2편이 합쳐진 것이 아니라 2행씩 8구가 기-승-전-결을 이루어 한 편을 완성합니다. 특히 3,4,구와 5,6구는 반드시 서로 엄정한 대구를 이루고 있어서 한시 형식미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시의 5,6구는 한시의 역대급 절창으로 손꼽히는 名句로 이름이 높습니다. 이 대구의 묘미를 우리말로 옮길 수 있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한계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목의 次-  는 원래 다른 작품의 형식을 빌어서 시를 쓰는 일종의 모의작이지만 여기서는 泊, 배를 정박한다는 뜻입니다. 즉, ‘북고산 아래에 닻을 내리고’입니다.      


客객路로靑청山산外외      나그네길은 청산을 지나서

行행舟주綠녹水수前전◎   푸른 강물에 배를 띄웠네.

潮조平평兩양岸안闊활      밀물이 들어오니 강은 넓고,

風풍正정一일帆범懸현◎   바람이 불어오니 배는 돛을 올린다.

海해日일生생殘잔夜야      수평선 태양은 어둠 속에서 돋아오르고,

江강春춘入입舊구年년◎   장강의 봄은 겨울에서 멀지 않구나.

鄕향書서何하處처達달      고향으로 보낸 편지 언제나 갈거나?

歸귀雁안洛낙陽양邊변◎   북으로 가는 저 기러기는 낙양으로 갈테지-.     


客路靑山外

客路 고달픈 나그네 길, 여로. 靑山外 청산 밖, 나그네 길이니 ‘청산을 지나’로 옮겼습니다. 청산은 북고산일 수도 있겠지만 나그네로서는 모든 자연이 청산일 것입니다.      


行舟綠水前

行舟 배가 지나다, 배를 타고. 여기에서는 ‘배를 띄우다’로 옮겼습니다. 중국은 수로가 발달되어있으므로 물길 나그네의 시가 많습니다. 綠水前 푸른 강 앞, 前은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청산과 녹수가 선명한 색채감을 주는 효과를 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강은 녹수가 아니니 청산과 마찬가지로 모든 자연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나그네 신세이지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시인의 의지 표현이라면 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潮平兩岸闊

潮平 조수가 평평하다는 조수가 밀려와서 강폭이 넓어졌다는 뜻입니다. 장강 하류는 강폭이 넓고, 바다의 조수에 따라 강의 모습이 수시로 바뀝니다. 兩岸闊 양안이 넓다. 뱃길이 더 넓어질 것이고, 그만큼 나그네 시름은 더 커질 것입니다.      


風正一帆懸

 바람이 불어오다. 바람이 배를 잘 갈 수 있게 분다. 一帆懸 돛을 매달다, 올리다. 一은 앞 구의 兩과 짝을 이루려는 의도일 뿐이므로 兩과 함께 생략하는 것이 우리시에 좋을 것입니다. 3구와 대구를 이루도록 번역해야 합니다. 한시의 대구는 음절, 성조, 통사구조를 맞추어야 하지만 음절, 성조는 번역이 불가능하니 최소한 통사구조는 살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海日生殘夜

海日 바다에사 떠오르는 해. 장강은 강폭이 넓어서 海日이라고 과장한 것입니다. 이를 직역해서 바다에서 해가 뜬다라고 한다면 뻔한 거짓말이 됩니다. 중국인들은 과장이란 사실을 알지만 우리는 그대로 곧이 듣거나 거짓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번역은 원작에 오히려 손상을 입힐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라 하지 않고 '수평선'이라고 옮겼습니다. 生 해가 떠오르다. 일출. 殘夜 남은 밤. 곧 새벽, 여명. 즉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       


江春入舊年

江春 강의 봄. 앞 구와 대구를 유지하기 위해서 ‘장강의 봄’이라고 옮겼습니다. 舊年은 작년, 지난 해. 入 들어가다. 앞 구의 生과 짝을 이루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入과 生은 반의에 가까워서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글자대로 봄이 겨울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出이 아니라 入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의로 말하면 入보다는 出이 더 가까울 것입니다. ‘강 봄은 겨울에서 나오고-’ 그러나 이는 원작을 지나치게 파괴할 것이므로 피했습니다. 이것을 직역하여 ‘강 봄이 지난 해로 들어간다’라고 하면 더울 시가 아닐 것입니다. 이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겨울에서 멀지 않구나’라고 옮겼습니다. 후인이 평하기를 3,4구의 대우는 흔히 할 수 있지만 5구와 6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솜씨가 아니라고 절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구는 한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名句로 꼽힙니다. 이 절창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하여 원작의 손상을 무릅쓰고 옮겨보았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의역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나 직역해서는 대구의 묘미를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언어의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鄕書何處達

鄕書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何處 어디, 어느 곳? 達 이르다. 도착하다. 그러나 이를 직역하면 ‘편지가 어디로 가나?’이지만 이는 詩意가 아닐 것입니다. 시인은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가 어디로 가나가 궁금한 게 아니라 ‘언제나 갈 수 있나?’가 관심사일 것입니다. 다음 구에 歸雁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소식을 전할 방법이 방법이 없으니 ‘언제나 갈거나?’로 옮기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歸雁洛陽邊

歸雁 북으로 돌아가는 기러기. 洛陽邊 장안, 작자의 고향입니다. 邊은 압운을 이루기 위한 글자이므로 생략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시는 이와 같이 한시의 율격을 맞추기 위한 시어가 있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옮기면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인편이 없으니 기러기에 소식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일 뿐, 기러기가 고향인 낙양으로 간다는 확신이 없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나그네의 향수가 절실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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