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수 Oct 17.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85

서러운 봄

   


  春望    

               杜甫    721-770 


國국破파山산河하在재      성은 깨어졌어도 산하는 여전해서,

城성春춘草초木목深◎심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 

感감時시花화濺화淚루      시절을 생각하니 꽃에도 눈물을 뿌리고,

恨한別별鳥조驚경心◎심   이별을 생각하니 새 소리에도 소스라친다. 

烽봉火화連연三삼月월      봉화가 석달이나 이어지니

家가書서抵저萬만金◎금   집소식은 만금에 이르도다. 

白백頭두搔소更갱短단      흰머리 긁어 더욱 짧아지니

渾혼欲욕不불勝승暫◎잠   비녀 꽂을 머리칼마저 없구나.     


 이 시는 옛날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작품이라서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번역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소개합니다. 두보는 설명이 필요없는 위대한 詩聖(시성)입니다. 작품도 많지만 하나같이 진중, 인간애, 고뇌, 사실적, 윤리적입니다. 感時- '시대를 생각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라는 말은 바로 이 시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습니다. 가벼운 언어유희 시에 매료되는 요즈음의 세태가 과연 바람직한지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한강의 소설이 진중하듯이 노벨상이 있었다면 단연 두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에서도 불우했던 그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묘미는 역설(逆說)에 있습니다. 제목으로 보면 ‘봄의 희망’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내용은 그와는 전혀 반대인 ‘봄의 절망’입니다. 봄은 마땅히 희망, 소생의 계절이지만 자신은 전쟁포로 신세가 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으니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만개한 꽃은 오히려 눈물을 뿌리게 하고, 아름다운 새소리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역설적인 장면이 전개됩니다.        


國破山河在 

國破 나라가 깨어지다, 망하다. 국은 '나라'이지만 원래는 城이나 도회지였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깨어진다'보다 '성이 깨어졌다'고 옮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안록산의 난'으로 당나라가 망했다기보다는 장안성이 함락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입니다. 山河在 산하는 남아있다. 우리 시조에도 '산천은 의구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여전하다’라고 옮겼습니다. 안록산의 난으로 현종이 촉으로 파천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城春草木深

城春 성. 장안성의 봄. 두보는 안록산의 난 때에 가족을 피신시키고 나서 반군에 포로로 잡혀 장안성에 있었습니다. 앞에서 성이라고 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중복을 피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草木深 초목이 깊다는 말은 잡초가 을시년스럽게 우거졌다는 말입니다.  봄이 왔다는 사실보다는 전란의 황폐한 모습이 더 중요한 사실입니다.       


感時花濺淚

感時 시절의 느낌, 전란의 비극. 花濺淚 꽃이 눈물을 뿌리게 하다. 濺은  흐르는 눈물의 양이 많다는 뜻입니다. 작년에는 아름다운 꽃이었으나 지금은 그 경치를 즐길 수 없는 시절이 되었으니 그 반전과 아이러니의 장면이 오히려 눈물을 쏟게 합니다.      


恨別鳥驚心

恨別 가족과의 이별을 한하다. 鳥驚心 새가 마음을 놀라게 하다. 태평시대에는 아름다운 새소리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할 뿐입니다. 어쩌면 새소리가 날카로운 군호(軍號)로 들렸을 것입니다. '산천은 의구'하지만 사랑하는 사라들은 보이지 않으니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더 슬프게 하는 아이러니입니다. 앞 구와는 대구를 이루어야 하므로 통사구조에 유의하여 옮겼습니다.      


烽火連三月 

烽火 적군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신호. 連三月 석 달을 이어지다. 전란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家書抵萬金

家書 집 소식을 알리는 편지. 抵 값하다. 해당하다. 萬金 많은 돈, 귀중하다. 만금을 주어도 얻을 수 없다. 집 소식을 알 수 없어 답답함을 토로한 장면입니다. 역시 앞 구와 대우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白頭搔更短

白頭 흰 머리. 搔 가렵다. 긁다. 更短 더 짧아지다. 나이 들고 삶이 어려워질수록 흰머리가 늘고, 탈모되기 쉬운 법입니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빠져나가는 머리칼로 간접진술한 장면입니다.       


渾欲不勝簪

渾 한데 모아, 모두. 欲 하고자 하다. 하고 싶다. 不勝 이기지, 감당을 못하다. 簪 비녀. 비녀조차 얽어맬 머리칼이 없다는 탄식입니다. 두보는 병약한데다가 오랜 유랑생활로 머리가 일찍 빠졌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탈모는 가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8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