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사촌과의 만남
喜見外弟又言別
李 益 748-827
十십年년離이亂란後후 난리통에 헤어진 지 십년만에
長장大대一일相상逢봉 나이들어 (객지에서)처음 만나다.
問문姓성驚경初초見견 처음 성을 물어보고 놀라고,
稱칭名명憶억舊구容용 이름을 듣고서야 어렸을 적 얼굴이 떠올랐다.
別별來래滄창海해事사 헤어진 후 쓰라린 세상사-
語어罷파暮모天천鐘종 풀어놓고 나니 밤이 깊었다.
明명日일巴파陵릉道도 내일은 또 파릉으로 떠나야 한다니
秋추山산又우幾기重중 차가운 가을 산이 또 몇 겹이런가?
일반적으로 한시는 前정경과 後서정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정경이란 배경이나 사건이고, 서정이란 이에 대한 시인의 감상,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이와는 달리 비극적인 사건이 서사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묘사보다는 사건의 진술이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높이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5언 율시이기는 합니다만 율시가 갖추어야 할 대우, 즉 통사구조가 좀 느슨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시로 번역하고나니 보다시피 대우가 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크고 작은 전란, 천재지변, 전염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亂이란 '安史의 난'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컸으므로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기도 어려웠습니다. 대가족사회에서 외사촌은 매우 가까운 가족이었습니다. 십 년만에 객지에서 어렵게 만난 외사촌을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내일 또 다시 이별해야 한다는 운명은 참으로 가혹합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가족 간의 우애가 옛날과 달라 이 시의 이별의 아픔이 제대로 전달될지 궁금합니다. 전란에 시달렸던 중국인들은 이러한 비극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먹고살기 위한 이산가족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조선족들도 그렇습니다.
十年離亂後
十年 헤어진 세월. 離亂 난리를 만나다. 흔히 ‘난리가 났다’라고 말하지만 원래 ‘이난’이 맞는 말입니다. 離는 이별하다가 아니라 만나다이고, 亂은 혼란입니다. 그러나 소통을 위해서 우리 표현으로 ‘난리통’이라고 옮겼습니다.
長大一相逢
長大 성장, 장성, 크다. 어렸을 적 이별했던 시간이 오래였음을 나타낸 장면입니다. 여기에서는 '나이들어'라고 옮겼습니다. 객지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시의 특성상 생략할 수밖에 없었으니 독자가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시는 율격을 맞추기 위해서 다양한 글자를 동원하기 때문에 다소 무리한 표현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글자를 따라서 옮기다 보면 원작의 의도를 제대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시를 직역하다 보면 詩意는 물론 그 예술성을 전달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한시를 직역해 놓고 그 예술성을 논의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一相逢 처음 만나다. 헤어진 지 십 년만에 헤어졌던 외사촌을 처음 만났다는 뜻입니다. 一은 처음, 한 번이란 뜻이지만 '우연히'라고 풀이해도 좋을 듯합니다. 원작에 외사촌이란 말이 없지만 제목에 나와있으니 이해에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問姓驚初見
問姓 성씨를 묻다. 서로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씨는 가족임을 입증하는 표지입니다. 驚 놀라다. 初見 처음 보다. 나그네 길에 처음 만난 사람과 통성명을 하다가 우연히 외사촌임을 알고 놀랐다는 뜻입니다. 또는 처음 만났지만 어딘가 집히는 곳이 있어 성을 확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십 년만에 만난 외사촌을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니 세월이 길었다기보다는 모진 풍상에 몰골이 심상치 않았다는 뜻일 겁니다.
稱名憶舊容
稱名 이름을 알다. 憶 생각나다. 舊容 옛 얼굴 모습. 이름을 듣고서야 외사촌 동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너무 어렸을 때에 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 구와 대우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 없이 사건의 진행을 빠르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간의 심리를 압축된 시어로 표현한 솜씨가 놀랍습니다.
別來滄海事
別來 이별한 이후, 헤어진 이래. 來는 보조사. 滄海事 세상사, 겪어온 온갖 세파, 고생, 고통. 세상사. 십 년간의 고초를 단숨에 서술하고 있습니다.
語罷暮天鐘
語罷 말이 끝나다. 마치다. 서로 간에 겪었던 모진 세상풍파를 말하다. 暮 날이 저물다보다는 늦다, '밤늦게'라고 옮겨야 시의에 맞을 것입니다. 십 년만에 만난 외사촌인데 밤을 새우지 않고는 모진 세파를 다 털어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天鐘 하늘의 종. 심야에 울리는 종. 밤새워 그동안 겪었던 일을 풀어놓자니 밤이 너무 빨리 지나갔을 것입니다. 대가족 사회에서 외사촌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창해사와 모천종이 통사구조가 일치하지 않아 대우가 엄정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시로 옮겨놓으니 대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明日巴陵道
明日 내일, 십 년만에 만난 외사촌이라면 밤을 새웠을 테니 사실은 明日이 아니라 오늘이라야 시의에 맞을 것입니다. 巴陵 호남성 악양 일대. 道 길. 그러나 ‘길을 떠나다’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내일에는 파릉으로 떠난다니 상봉의 기쁨은 순식간이요, 둘은 또 헤어져야 할 운명입니다. 외사촌이지만 갈 길이 달라 또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 서럽습니다. 아주 빠르고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으므로 숨어있는 그 기막힌 사연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秋山又幾重
秋山 가을 산. 비극이 벌어지는 계절과 이별의 공간. 가을은 나그네로서는 더 견디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又幾重 또한 몇 겹인가? 重은 무겁다가 아니라 겹, 중복. '몇겹인가'라고 옮겼지만 사촌들이 다시 헤어져야 할 이별의 공간의 거리를 말합니다. 이를 전달하기 위하여 원작에 없는 ‘아득한’을 덧붙여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