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
제주도에서는 토란을 흔히 볼 수 있다. 따로 심지 않아도 야생토란이 널려있다. 토란은 밭두렁에도 있지만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서도 볼 수 있다. 그 토란은 심은 것이 아니라 토란구근이 물에 떠내려가다가 정착한 것이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토란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있어도 기껏 어른 손바닥만 한 잎이었지만 비가 오면 빗방울이 구슬처럼 방울져 굴러다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표면장력 현상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土卵은 뿌리가 달걀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놈은 메추리알만 하고, 큰 것은 달걀만 하다. 토란은 독성이 있어서 물에 담가서 독을 빼야 한다. 맨손으로 껍질을 벗겼다가는 독성에 손이 아리고 가렵다. 국을 끓이면 뽀얀 국물에 부드러우면서도 입안에 가득한 풍미가 달걀보다도 더 맛이 좋았다. 귀한 음식이라 자주 먹을 수도 없었다.
토란은 원산지가 중국남부, 동남아시아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토란을 芋頭(우두)라고 한다. 학명으로는 토란과 같이 Colocasia esculenta이니 이들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이다. 球根(구근)다년생 식물이다. 뿌리의 모양으로 보아서는 우리의 토란이란 이름이 더 좋아보인다. 그 모습이 땅 속에 있는 달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토란이란 다른 약용식물이다. 중국의 우두는 우리의 토란보다 잎도, 뿌리도 크다. 어린애들이 그 잎을 꺾어서 우산을 만들어 놀 정도로 잎이 크다. 그러나 그 뿌리는 토란보다 크지만 투박하고 맛도 덜하다. 먹거리는 대개 큰 것이 맛이 덜하다. 작은 고추가 맵고, 장수노인들 중에는 대개 키가 작고, 키가 큰 사람은 싱겁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키가 큰데 그래서 더 허약한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처음 와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란이 매우 반가웠다. 밭두렁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토란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데 알고보니 따로 주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반가워서 캐다가 국을 끓여 먹으니 옛날 그대로의 맛이었다. 그러나 따로 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함부로 캘 수 없었다. 비록 먹을 수는 없어도 주인 없이 개울가에서 자라는 토란잎은 보기가 더 좋았다. 토란은 원래 습기를 좋아하는 식물이라서 물가에 있는 토란잎은 밭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키가 사람 키만큼 되고, 줄기도 굵고, 잎도 커서 비라도 오면 잎에 구르는 물방울이 왕방울만 해서 여전히 신기하다. 볼 때마다 동심이 살아나는 것 같다.
산보길에는 지장샘물이 도랑을 이루어 흘러가는데 거기에는 중국에서 보았던 우두만큼이나 큰 토란이 있다. 주인이 없으니 잎이 크게 자라서 산보길의 볼거리이다. 저 맛있는 토란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으니 또한 신기했다. 입맛이 다셔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이미 둘레길의 볼거리이니 이미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란잎이 몽땅 사라져버렸다. 깜짝놀라 자세히 보니 누군가 토란잎을 잘라가 버렸다. 잎은 잘라서 버리고 줄기를 몽땅 가져간 것이었다. 그래도 뿌리는 남겼으니 다행이랄까? 토란줄기는 고깃국 맛을 내는 데 긴요한 재료이다. 나도 잠깐 그런 생각을 해 본 것이었지만 그 사람은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오십 보 도망간 자가 백보 도망자를 지탄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연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제 욕심만 차리는 사람과는 차이가 클 것 같다. 자연개발론과 환경보호론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대강사업이나 새만금사업에는 반대하지만 도롱룡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국고를 날려버린 일마저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연보호도 좋지만 인간의 이익과 편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개인의 식탐이 여러사람의 정서를 빼앗아버려서 서운하다.
제주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도둑이 없다는 곳이니까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인심이 좋다는 반증이다. 사라진 토란줄기도 주인이 따로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올레길의 위안거리였으니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은 다 주인이었다. 제주도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그것이 외지 사람의 소행인지, 토박이의 짓인지가 무척 궁금하다. 제주도는 관광객이 많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나서 나처럼 외지인도 많이 사는 곳이다. 그러니 그것이 제주도인들의 민낯인지, 육지것들의 소행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돌담 틈에 음료수병을 쑤셔박고, 쓰레기를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언짢다. 제주사람들은 약싹빠른 육지인들을 경계하고, 외지인은 막무가내 텃세부리는 제주인들을 원망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제주사람들은 육지사람들을 좀더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외지인들은 제주인들의 싱처와 정서를 존중하고 이해해주면 좋지않을까?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사는 사람들도 오름처럼 어우러져 아름답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