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출도기(出島記)

노인으로 살기

by 김성수
th?q=%eb%85%b8%ec%9d%b8+%ec%ba%90%eb%a6%ad%ed%84%b0+%ea%b7%b8%eb%a6%ac%ea%b8%b0&w=120&h=120&c=1&rs=1&qlt=70&o=7&cb=1&dpr=1.3&pid=InlineBlock&rm=3&mkt=ko-KR&cc=KR&setlang=ko&adlt=strict&t=1&mw=247


오랜만에 딸이 사는 세종시에 왔다. 서귀포에서 4년을 살다보니 세종시 같은 첨단도시는 매우 낯이 설었다. 길도 모르고, 방향감각도 없어 나들이하려면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본래 도시를 달가워하지 않던 처지이니 촌뜨기가 따로 없다. 우선 택시잡기가 어려웠다. 영업용 택시가 드문 것은 이 도시가 아직 활기가 적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없이 버스를 타려고 길을 물어도 길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객지사람이 많아서일 것 같았다. BRT버스가 있다는데 그것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버스와는 달리 도로 한가운데에 승차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느 방향에서 탈지 몰라 여러 번 허탕을 쳐야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어렵사리 목적지를 확인하고 일반버스를 탔지만 아무래도 방향이 이상하여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턱없이 돌아가는 버스였다. 할 수 없이 차를 내렸지만 내리고 보니 콜택시 부를 줄도 모르고, 걷기도 어려우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할 수 없이 바쁜 딸을 불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난감한 상황에 부딪치니 사리판단하는 것도 예전 같잖고, 그때마다 시행착오가 연속된다. 왜 이런 엉뚱한 짓을 하는지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골살이를 오래 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나이탓일 것 같다. 게다가 걷기마저 불편하니 오판할 때마다 그 대가가 적잖다. 이런 곤란이 어찌 도시길찾기에 그칠 것인가?

나이가 들면 매사가 이렇다. 이런 일이 어찌 나만의 사정이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노인들의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백 살이 넘어도 활동을 하는 저명인사도 있고, 내 나이또래도 하루를 즐겁고 바쁘게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노화현상을 알면서도 젊은이들 앞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순순히 인정하면 젊은이들한테 무시당할 것을 염려하는 심사일 것이다. 짐승들은 병이 들고, 다쳐도 애써감추고 산다고 한다. 들키는 순간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의 노쇠는 자신이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쇠를 감춘 채 젊은이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가르치려 든다면 젊은이들이 곱게 받아들일 리 없다.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오판과 실수를 하더라도 양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노인들은 모르고 있다. 자신의 문제를 모른 채 젊은이들을 탓하려 든다면 노인들은 점점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노인의 고립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거기에다가 오히려 젊은이를 꾸짖거나 이기려 한다면 꼰대를 면할 수 없게 된다.

노인이 지혜를 자랑하고 존중받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노인의 경험과 체험이 존중받던 시대는 가고, 이제 노인의 자부심이었던 단편적인 지식과 식견이 쓸모가 없어졌다. IT, AI의 시대에 첨단장비와 정보에 뒤떨어진 노인의 알량한 지식과 경험과 지혜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되었다. 늘 극한언론이나 저질유튜브에 쇠뇌당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관을 고집하여 스스로 경멸당하는 늙은이들이 많다. 멀쩡하던 이들도 70대만 되면 젊은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노인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신의 처지를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노인들도 첨단시대에 맞추어 능력을 기르든가 아니면 젊은이들의 판단과 지혜를 인정하고 자신의 낡은 가치관과 고집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는 비결이 될 것이다. 나는 본래 게으르고 둔하여 젊은이들을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이제는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번 出島를 계기로 다시 한번 노인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무기력을 벗어날 자신도, 오기도 없으니 순순히 자연의 섭리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옛날 같으면 벌써 산에 갈 나이었을 것이니 그나마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머지 덤을 살아야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