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을 또 잃어버리다.
스마트폰을 또 잃어버렸다. 3년 전에 했던 짓을 또 저지른 것이다. 아예 끈으로 목걸이를 하고 다니라는 충고를 무시한 대가이다. 객지에 와서 이런 황당한 일을 당했으니 일체의 연락처를 몽땅 잃어버려 꼼짝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갔다오는 길이었으니 당장 내 소식을 궁금히 여기고 있을 아내도 그렇고, 약속한 사람, 만나보고 가야 할 사람도 있는데 내 전화가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공중전화도 없는 세상이니 천상 남의 전화기를 빌려야 하는데 요즈음 흉악한 사기꾼들이 많아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줄 사람도 없을 것이니 난감한 일이다. 답답한 마음에 착해 보이는 여학생을 골라 정중히 부탁해 보았으나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화끈거리는 낯을 문지르면서 한참 기다렸다가 더 착해 보이는 여학생에게 부탁을 했더니 고맙게도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내 전화 말고는 외는 번호가 없으니 정작 뾰쪽한 궁리가 서지 않는다. 그 학생은 나를 도우려고 했지만 열차가 도착하니 그냥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학생의 성의가 은인만큼이나 고마웠다.
지하철을 타고 보니 자리가 없었다. 먼 거리를 가야해서 난감한 판에 젊은 남학생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마침 다리가 아파 염치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얼른 자리를 양보받았다. 그 젊은이가 곧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정거장을 지나도 그는 내리지 않았다. 고마운 생각에 가서 고맙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 사이에 그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맙다는 의사표시를 진즉 했어야 하는데- 한 젊은이에게 용기를 내서 전화를 부탁했지만 냉랭한 거절을 받았다. 궁리 끝에 염치불구하고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에게 전화를 부탁을 하니 고맙게도 순순히 들어주었다. 전화기를 빌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내 전화번호를 걸어보았으나 역시 답이 없었다. 전화기를 돌려주면서 요새 같은 인심에 참 고맙다는 말을 했더니 그 여학생 역시 전화기를 빨리 찾기 바란다는 인사를 갖추었다. 낙담한 가운데에서도 나를 사기꾼으로 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요새도 이렇게 착한 젊은이가 있구나.
철없는 젊은이들을 꾸짖는 일이 많지만 착한 젊은이들을 잠깐 동안 세 사람이나 만난 것이 불행중다행이었다. 이런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철부지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지만 아직 선량한 젊은이가 더 많을 것이다. 우선 내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옛날 제자들을 생각하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부 언론이나 매체의 기사에는 비관적인 내용이 많지만 더 많은 미담들이 드러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이 난무한다지만 더 많은 학생들은 피해자이거나 선량하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이 이런 일에 더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우선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교육에 더 힘써야 한다. 자식 사랑은 누구나 같겠지만 공부 잘하는 자식을 기른다는 욕심보다는 세상에 적응을 잘해나가는 자식을 기르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공부보다는 인성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자식과 나와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자식은 내 소유가 아니고 사회의 일원이어야 한다. 이기적인 자식을 만들면 나도 자식에게 용납되지 못한다. 나만 아는 자식은 아무리 출세를 하더라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부모가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학교, 종교가 그 역할을 해야하지만 그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종교의 임무이겠지만 세상을 어지럽히거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영혼을 하느님은 구원하실까?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도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면 하느님이 용납하실 것 같지 않다.
스마트폰 하나 챙기지 못하여 딸이 걸어주는 목걸이 끈에 폰을 매는 주제에 또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 있다. 길을 가면 세 사람의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 세 사람의 착한 젊은이들이 고마워서 하는 잔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