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연말연시가 되면 ‘새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새로운 설계를 하고, 어른들께 연하장도 올리고, 신년축하인사도 나누고, 밤새 망년회도 떡 벌어지게 벌였다. 양력설, 음력설 따져가면서 새해를 맞이하느라 활기가 넘쳤었다. 나이를 먹고싶은 사람은 양력설을, 조금이라도 젊어지고 싶은 사람은 음력설을 꼽았다. 한 살 더 먹는 것에 뿌듯함과 책임감으로 희비가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흔히들 ‘칠십은 中年, 인생은 70부터’라고 큰소리치지만 나는 노인이 분명한 칠십을 한참 넘었다. 새 달력을 받아들고 빨간 날을 헤아려보고, 새로운 다짐을 해 보고, 일 년 대소 집안행사도 챙겨보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공휴일, 연휴가 반갑기는커녕 더 불편하게 되었다. 한 살이라도 더 많은 나이를 내세우기도 하고, 한 살이 늘 때마다 의기양양하던 시절도 있었다. 가슴을 떨리게 하던 청춘도, 막중한 책임감이 짓누르던 혈기도 가시고, 이제는 新年도 구랍(舊臘)도 데면데면해졌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된다’든지, ‘내 나이가 어때서’라면서 뻔뻔한 노인들도 있지만 노령사회에서 이런 말들은 이기적이고, 염치없는 허세요 자위의 수단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겉늙었다고 핀잔하거나 무기력을 탓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냥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늙고 무기력한 자신을 부정해보아야 숨겨지지 않거니와 그래봐야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만하는 짓이다. 물론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나이또래의 3할은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니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두뇌도 마찬가지이다. 달달 외웠던 일들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나고, 가까운 사람의 이름이나 늘 쓰던 낱말도 생각이 안 나고, 잦은 변소출입에 그때마다 한참 명상에 잠겨야 하거나, 애써 일어나서는 왜 일어났는지 생각이 안 난다면 치매가 다가오는 징조이다. 기억력마저 그 모양이니 자신에 찼었던 판단력, 가치관도 성할 리가 없다. 그런 처지에서 젊은이와 대화가 되지 않는 책임을 그들에게 돌린다면 어른 대접마저 받을 자격이 없다. 젊은이들을 철딱서니 없다고 탄식할 때에 그들은 우리를 불통꼰대, 틀딱충이라고 몰아붙인다. 철딱서니는 나이가 들면 고쳐지지만 불통꼰대는 나이가 들수록 불치병이 된다. 불치병 환자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이들을 오히려 탓한다면 賊反荷杖(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인의 지식과 경험이 지혜의 상징이었던 시대는 가버린 지 오래이다. 첨단정보와 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에 저질유튜브에나 빠져있다면 한심한 꼰대를 벗어날 수 없다.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온 나라가 법석인다. 보신각에서는 제야타종을 보느라고 수십 만의 인파가 추위를 무릅쓰고, 도심 고층빌딩에서는 화려한 불꽃잔치가 허망하고, 산과 바다에서는 해맞이를 하느라고 혹한도 다 녹일 듯하다. 나는 본래 이런 일과성 행사를 극성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지금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천만인파가 열광한다는 프로야구경기장에도 가 본 적이 없다. WBC에 가면 예선탈락이고, 월드컵에 가서도 마찬가지인 우리 실력에 적지않은 돈을 써가며 운동장에 모여들어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기야 젊은이들은 스포츠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이해도도 높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운동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나 같은 노인이야 안방에서 편안히 누워 TV를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오히려 노인네가 운동장에 앉아있다면 화젯거리일 것이다.
연말연시의 법석에 무감각한 나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을 법도 하다. 시건방진 생각이지만 어쩌면 험난한 인생의 굴레에서, 각박한 시간의 허망에서 벗어날 수 있지않을까? 이른바 사회의 관습이란 인간이 만든 굴레이고, 달력과 시간도 인간이 고안해 낸 허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설정한 관습과 시간은 본질이 아닐 수 있다.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난 이 나이쯤 되면 현상에 불과한 관습이나 시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해가 바뀐다고 해서 나에게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2025년이 뱀이거나 26년이 적토마라거나 인생정년으로 달려갈 뿐이다. 혹은 희망을 갖은 노인은 더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장수를 얻기 위해서 노인의 품격을 잃고싶지는 않다. 수명연장이나 명예를 위해서 세파와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꽃을 피고 지우는 동백꽃이야 희로애락에 부침하겠지만 한라산 구상나무 고목이야 꽃이 피거나 지거나 관여할 바 아니다. 도가에서 말하는 枯木死灰(고목사회)나 坐忘(좌망)의 경지는 몰라도 아직도 젊은이들과 어울려 一喜一悲한다면 나잇값을 못하는 짓이 아닐까? 한 해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이야 사람의 당연한 도리이겠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 한다면 오히려 지나친 욕심이지 않을까싶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