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국격(國格) 4

대통령의 언어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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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구사하는 언어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일국의 대통령은 개인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회담 내용은 물론이지만 화법, 어휘, 예절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언행에 따라서 나라의 품격과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자격요건 중에 화술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적어도 회담에서 사용하는 화법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화법 중에서도 우리 대통령들의 존비법 구사에서는 문제가 적지 않았다. 화법의 기본도 몰라 풍파를 일으켰던 대통령도 있었고, 화술의 능수인 이재명 대통령마저도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있어 간과하기 어렵다.


상대가 아무리 강대국이고, 나이가 많더라도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므로 대등한 입장에서 말해야 한다.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한다면 함부로 상대방에게 높임말을 쓸 수 없는 일이다. 높임말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어법이다. 우리말에서 존비법은 언어예절의 바탕이라 이를 어기면 소통력이 떨어진다. 이는 나이를 따지고, 신분의 상하가 엄격하고, 예절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문화의 산물이다. 언어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는 문화가 고도로 발전된 사회이므로 우리의 존비어법은 까다롭지만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외국, 특히 서구에서는 사회문화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우리처럼 나이와 신분을 중시하지 않고 그에 따른 예절도 엄격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에 존비법을 갖추어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예절을 갖추어도 상대방은 의식하지 못함은 물론 오히려 우리의 존비어법을 거추장스럽게 여길 수 있다. 어차피 우리의 높임말은 통역과정에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을 의식하는 것은 우리뿐이다. 정상회담의 관건은 내용에 있는 것이지 우리의 언어예절 형식은 회담의 본질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통령이 꼬박꼬박 외국 정상에게 높임말을 쓴다면 국민의 자존심에 손상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역대 우리나라 정상들이 외국영수와 회담을 할 때 보면 예절을 가려 높임말을 쓰기에 바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자타가 인정하는 수준을 갖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통령이 외국원수와 회담을 하는 말을 들어보면 듣기에 불편한 언사가 적지않았다. 미국에 가서 팝송을 외워서 열창한다든지, 일본에 가서 폭탄주를 즐기는 것이 외교수단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에 신명을 다 바쳐 회담을 준비하고, 치열한 협상으로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하는 것이 정상외교에 임하는 기본자세이다. 그리고 정상회담 중에서만이라도 국가원수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언어의 국격’을 지켜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에도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단히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인칭에 있어서 상대방에게 ‘저’ ‘저희’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반드시 ‘나’라고 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차린다고 ‘저희’라고 하는 순간 국가와 국민의 품격이 낮아진다. ‘님’자를 붙여서도 안 되고, ‘께’라는 접사를 써서도 안 된다. 국민이 상대방 국민에게 낮춰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동사에 높임을 표시하는 ‘시’라는 어미를 넣어서도 안 된다. ‘말씀’이 아니라 그냥 ‘말’이라고 해야 하고, ‘드리다’가 아니라 ‘주다’라고 해야 국민이 당당해진다.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국가와 국민들이 존엄과 긍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다.어차피 그들은 우리의 존비법을 구별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상대방에게 높임말을 쓰는 순간 우리 국민 전체가 상대국민에게 저자세가 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명석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취임 직후 숨가쁘게 열린 각종 정상회담에서 초보 대통령이 벌인 외교성과는 괄목할 만하다는 외신이 전한다. 강대국 미국과 중국에 의연하게 대처하여 국익을 지켜냈으며, 기울었던 일본과 대등한 위상을 확보한 점은 진영에 관계없이 인정해야 할 일이다. 국익에는 이념, 세대, 지역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자해적인 吹毛覓疵(취모멱자)행위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의식있는 국민을 안타깝게 한다. 미국에 올인하고, 중국과 담을 쌓아 국제관계를 외통수로 몰아가고, 일본에 굴욕적이었던 전 정부와 비교하면 우리 국민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전 대통령에 대한 심판은 계엄내란외환은 물론 외교 경제의 실책에 대해서도 적시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외국정상과의 화법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언어의 국격을 지켜내기 위해서 대통령의 좀더 신중한 언행과 주변의 조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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